특이하게도 일본엔 아직도 '안내양'언니가 많더라. 기차에 탔을 때도 안내방송을 하는 사람이 안내양언니라 꽤 놀랐다. 안내양 언니님들은 잠시 후 시티루프 버스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언니님하의 친절한 안내방송에 따라 30여분 후 별 탈 없이 산노미야 역에서 내렸다. 역에서 내리자마자 맞닥뜨린 고베의 첫 인상은 '이국적'. 같은 일본인데 왜 이리 정취가 새롭지. 아무리 일본에서 첨으로 신문물을 받아들인 곳이라지만 오늘날의 모습에까지 그러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건 좀 신기하잖아. 가이드북을 펴 보니 희안하게도 이 도시 한 복판엔 가장 일본틱한 관광코스 중의 하나인 신사가 있다는 거다? 이국의 정취 속에서 만나는 '진국'일본;의 모습은 어떨까. 무작정 신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신사 가는 길목인 '이쿠타 로드'엔 가이드북에 나와있는 맛집들이 줄줄이 들어차 있었다. 다 가볼순 없으니 기념으로 죄 사진찍어주는 관광객스런 센스, 를 발휘하다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당도했다. 아, 사진으로나 보던 바로 그 일본의 '신사'로구나.
주말이라 그런지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 외에 일반 시민간지;의 방문객들도 꽤 많았다. 사실 신사 하면 '야스꾸니 신사'가 절로 떠오르는 지라 신사마다 모시는 신이 다르다 해도 일본 신에게 내 안녕;을 기원하기는 좀 그렇더라. 그래서 남들은 종 치고 기도 하고 소원 메달 때; 조용히 절에 온 기분으로 뒷뜰을 산책했다. 오랜만에 보는 초록, 초록, 초록. 초록의 기운을 만끽하고 있으려니 절로 맘이 차분해졌다. 교토의 차분함을 포기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조금이나마 채워지는 느낌. 아이고 좋구나.
산사를 나와 찾아간 곳은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고베 시청이였다. 가이드북님 왈, 고베 시청 전망대는 다른 곳들과는 달리 무료랬다;; 무료라면 어딘들 못 갈쏘냐. 낼름 들어가 고베의 전망을 감상 해 주었다. 드넓게 펼쳐지는 바다와, 그 바다를 에워싼 빌딩들 중 고메의 랜드마크 '고베 포트타워'가 눈에 들어왔다. 옳거니. 가까운 데 있구나. 다음은 저 녀석이다! ...어쩐지, 이젠 가이드북을 버려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걸어서 갈 생각이였는데, 날이 하도 더워 계속 걷다간 쓰러질;것 같아 모토마치 다이마루 백화점 앞에서 시티루프버스를 탔다. 역시나 여기서도 만날 수 있었던 제복차림의 안내양 언니는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목소리로 녹음방송이 아닌 라이브방송;을 해 주었다. 옥구슬 소리;에 취해; 어버버 앉아 있으려니 버스는 금새 고베 포트타워 앞에 도착했다. 포트타워도 사실 전망대라 전망대만 연속 두 번 가는게 뭔 의밀까 싶어 안 들어가려 했지만 그래도 '랜드마크'를 누리고 싶은 관광객의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쩝.
포트타워에서 내려와 바로 옆 '모자이크'에 갔다. 바닷가를 옆에 두고 만들어진 이 거대한 건물은 흡사 코엑스몰과도 유사했다. 정신없이 들어 차 있는 가게들을 다 구경하는 데만도 꼬박 몇시간이 걸리더라. 구경을 마친 후 바다를 끼고 나있는 통로를 따라 걷다보니 오션뷰가 가능한 테이블이 죽 늘어져있는 레스토랑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중 가장 만만해; 보이는 곳으로, 고베 스테이크를 먹기 위해 들어갔다.
가게에 들어서니 잘 생긴 일본청년이 일어로 뭐라뭐라 묻는다. 못알아들어서 멍- 하니(얼굴엔 '어쩌라고' 표정 작렬;;) 서있었더니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가 '원 퍼슨?'이라고 묻는다. 아 혼자왔냐는 소린가보군. '예스'라고 대답하니 바로 바 자리로 안내해준다. 그리고선 펼쳐 준 메뉴판은 무려 외국인 전용 영어메뉴판. 스테이크가 있음을 바로 확인하곤 손가락으로 척 찍어보여 능숙히; 주문했다. 이윽고 하나 둘 요리며 사이드 메뉴가 나올 때 마다 '땡큐'라며 짧은-_- 영어만 구사했고, 잘생긴 서빙청년은 나를 완전히 일어벙어리로 점찍었는지 아예 일어대신 영어로 응수해줬다;; 그런데 잠시 후 물이 떨어지자, 아주 씩씩하고도 당당하게 외치고야 말았다. '오미즈오 구다사이!'. 헉, 이 문장은! 순간 말해놓고도 놀라 '내가 왜 이걸 알고 있지'싶어 기억을 더듬어보니, '일빠'(...)이지만 일어라곤 '닥꽝', '스메기리', '쓰르메' 정도 밖에 구사할 줄 모르는 울 아빠가 유일하게 외고 있어 식후 엄마에게 물을 부탁하면서 근 20여년 동안 말해왔던, 바로 그 문장인게다 -_-;; 캑. 이것이 바로 쇄뇌교육(내지는 평생교육-_-)의 성과인가. 서빙청년은 지긋이 웃어보였고, 살짝 머쓱해진 나는 어허허허 웃으며 '아리가또'라고 덧붙였다. 킁.
고베에서의 마지막 코스는 외국인들의 주거지역이였다는 기타노였다. 살짝 언덕배기에 위치한 이 마을엔 당장이라도 빨간 머리 앤이 튀어나올 것 같은 초록지붕의 이국적 가옥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영화 세트장을 연상케했다. 여기가 진정 고베 of 고베로구나. 자판기에서 뽑은 cc레몬을 홀짝거리며 동네를 기웃거리다보니 자그마한 야외 원형극장에 도착했다. 마침 청년들 몇이 막 노래를 마치고 박수를 받고 있었다. 짝짝짝짝 박수를 치며 잠깐 쉬어갈 겸 극장 계단에 앉았다. 목소리를 가다듬은 청년들이 이윽고 다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어진 노래는, 다부르에스 고마루이치의 라이브로 익숙한 '
위를 보며 걷자'였다 :)
낯선 거리에서 또 다시 만난 익숙함. 눈을 감고 그 익숙한 가사를 흥얼거리며 편안함을 느낄 무렵, 해는 이미 중천에서 서서히 기울어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제사 슬슬 잠시 후면 내가 이 곳을 떠나게 된다는 사실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정들자 이별이라더니 그 말이 딱일세. 내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이틀 뿐이였다는게 좀 서글프게 다가왔다. 이거 안 되겠다. 다음엔 고베, 교토, 나라에 오사카까지 더해서 일주일을 잡고 와야지. 다음번 일본행 목적지는 무조건 도쿄로 잡아두고 있었거늘. 그러고보니 지난번 후쿠오카에서도 아쉬움이 남았었는데. 이거 원, 일본 일주를 해야하려나.
꿈결 같았던 여정을 지나 현실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 에서, 어쩌면 여행 전 내가 쉬고 싶었던 이유는 육체적 피곤함 때문이 아닌 점점 더 무거워지는 업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였을까 하고 생각했다. 꼭 완벽해야 할 이유가 있겠어. 못하면 못하는대로 잘하면 잘하는대로 부딪치면서 성장해 나가는 거지.
막연한 두려움은 벗어던지고, 즐겁게 일하고 또 생활해야지. 오블라디 오블라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조만간 또 다시 혼자 이국의 땅을 밟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