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의 차원 :: 2009/11/14 02:37
요즘 피부과에 다니고 있다. 얼굴에 하나 둘 뾰루지가 돋아나기 시작한 건 지난 봄 부터였는데, 크게 대수로이 여길만한 건 아니였다. 그냥 예전에도 그랬던 것 처럼 대충 뾰루지에 좋다는 스팟제품이나 나서 바르면 되겠거니 했거늘.. 평소와는 달리 은근 몇 달을 가는거다. 슬슬 약이 오르기 시작한 나머지 여드름 피부에 좋다는 화장품을 큰 맘 먹고 종류별로 서너가질 샀다. 뭐가 더 좋을 지 몰라 이삼일에 한 번씩 번갈아가며 써보던 중, 하나가 문제를 일으켰다. 자기전 얼굴에 기도하는 심정으로-_- 쳐발쳐발 자고 일어나니 양 볼이 마치 불붙은 것 처럼 새빨갛게 달아오르면서 열이 펄펄 나기 시작한거다. 피부에 좋다는 화장품 정보를 얻기 위해 유명한 화장품 카페를 며칠동안 서치하며 얻은 얕은 지식에 따르면 천연성분 화장품이 첨에 얼굴에 닿으면 명현현상이라는 적응시간(=트러블 생기는 시간)이 걸리기도 한대서, 첨엔 그런갑다 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적응은 커녕 마치 벌에 쏘인 것 처럼 퉁퉁 붓고 피부표면이 두꺼워지면서 급기야 진물까지 나는거다..! 하루는 자다가 너무 가렵고 아파서 소리를 지르며 일어나 미친듯 인터넷을 뒤져보니 '접촉성 피부염'이라는 병명이 들어왔다. 주로 맞지 않는 화장품을 썼을때 일어나는 증상이며 악화되면 회복에 몇 백만원 가량의 돈을 쏟아붓게 되는 수도 있으니 한시바삐 병원으로 달려가야 빨리 나을 수 있다나. 그래서, 이렇게 돌고돌아, 결국엔, 피부과 문을 두드리게 된게 불과 며칠 전의 일이다.
피부과란 곳을 생전 처음 가 본 나는, 여기도 치과같은 치료단계(?)를 밟아나가는 곳일 거라곤 미처 생각치 못했더랬다. 그러니까, 예컨대 첨에 잇몸 어느 한 부위가 아파서 치과에 가게 될 경우 그 부위 진료만 끝나면 진료가 끝나는 것일거라 생각하지만 의사님하는 자연스럽게 이전에 때운 부분들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며 '다음엔 요기 진료해야 하니까 나오세요'하는 식으로 치아와 잇몸 전반에 걸쳐있는 문제들을 총체적으로 고쳐나가지 않나. (그러다보면 첨엔 몇천원일거라 생각했던 치료비가 순식간에 몇백만원으로 불어있고.. T_T) 퉁퉁부은 내 얼굴을 본 의사선생님은 확대사진을 철컥철컥 몇 장인가 찍으시더니 일단 부기를 빼기 위한 약들을 처방해주셨다. 성실하게 먹고 바르니 그렇게 날 괴롭히던 악성염증이 불과 이틀여 만에 가라앉더라. 그런데 그 다음에 병원을 찾으니 선생님은 본격적으로 내 얼굴 전반에 걸쳐있는 트러블 처치 프로젝트-_-에 돌입하시는게 아닌가. 이마에 좁쌀같이 난 뾰루지들을 가라앉히기 위해 보험이 되지 않은 약품이 투입되고, 벌어진 모공을 조이기 위해 특수 연고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버버 진료실에 앉아 있으면, 모든 것은 선생님의 지휘하에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오늘은 뺨에서 여물고-_- 있던 뾰루지 축출시술-_-이 있었다. 첨으로 피부과 수술대;에 누워봤다. 눈을 꾹 감고 침을 한 번 꼴깍 삼키니 얼굴 위로 축출기로 추정되는 무언가의 놀림이 부산히 일어났다. 쿡쿡쿡쿡. 뭔가 파내는 것 같은 느낌에 따끔거려 눈물을 찔끔 머금으니 시술;은 완료됐다. "왼쪽 뺨에 있던 큰거 있죠? 그거랑, 그 밑에 잘 보이진 않았지만 건드리니 피부 깊숙한 곳까지 고름이 차 있는게 있었어요. 그거 두개 짜냈어요. 약 바르고 밴드 붙일테니까 절대 환부에 물 가까이 하지 말고 내일 다시 오세요". 아아아. 별 것 아닌 프로젝트;에 며칠새 몇 만원이 쌩 하고 날아갔다.
'환부'에 손톱만한 미색의 밴드를 덧붙인 채 거울을 보니 제법 피부과에서 관리받고 있는 사람 티가 난다. 얼굴피부 전반이 학생때 못잖게 뽀얗다. 이거 화장품 몇달 바르는 거 보다 피부과 며칠 다니는게 훨씬 좋구나. 참으로 별천지로세.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어쩐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관리'라는 것의 차원은 이렇게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그 이상까지 존재하는구나.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내가 정상 혹은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상태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관리'를 받아 '업그레이드' 하고 있겠구나. 민감함과 무던함 사이를 가르는 기준은 개인의 '민감도'일 수도 있겠지만, 짐작컨대, 아마도 물질적 풍요 수준이겠구나.. 순간 며칠 전 본 다큐 속 노점 아줌마가 아들딸이 용돈모아 사준 핸드크림을 부여잡고 '나는 돈이 없어 이런 걸 생전 발라 본 적이 없는데.. 우리 착한 애기들 덕에 호강하는구나..'라며 꺼이꺼이 울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