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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로부터 자라나기 :: 2009/09/22 23:51

...(전략) 나는 어렸을 적부터, 대상이 사람이든 이데올로기든 조직이든, 더 헌신하는 사람이 느끼는 슬픔과 분노, 그리고 열정이 지나간 뒤의 황폐함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왜 언제나 더 사랑하는 사람이, 더 열정적인 사람이 상처받는지에 대해 분개했다. 이것이 그 어떤 이념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인생의 근원적인 불합리고, 부정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랑받을 때보다 사랑할 때, 더 행복하고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사랑하는 고통으로부터 자신의 크기, 깊이를 깨닫는다.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포함해 모든 대화는 최음제이며, 인생에서 깨달음만한 오르가슴은 없다. 상처와 고통은 그 쾌락과 배움에 대해 지불하는 당연한 대가이다. 사랑보다 더 진한 배움(intensive learning)을 주는 것이 삶에 또 있을까. 사랑받는 사람은 배우지 않기 때문에 수업료를 낼 필요가 없다. 사랑은 대상으로부터 유래-발생하는 에너지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 내부의 힘이다. 사랑하는 것은 자기 확신, 자기 희열이며, 사랑을 갖고자 하는 것은 권력 의지다. 그래서 사랑 이후에 겪는 고통은 사랑할 때 행복의 일부인 것이다.

사랑하는 것은 상처받기 쉬운 상태가 되는 것이다. 상처에서 새로운 생명, 새로운 언어가 자란다. '쿨 앤 드라이'. 건조하고 차가운 장소에서는 유기체가 발생하지 않는다. 상처받은 마음이 사유의 기본 조건이다. 상처가 클수록 더 넓고 깊은 세상과 만난다. 돌에 부딪친 물이 크고 작은 포말을 일으킬 때 우리는 비로소 물이 흐르고 있음을 깨닫게 되며, 눈을 감고 돌아다니다가 벽에 닿으면 자기가 서 있는 위치를 알게 된다. 이처럼 앎은 경계와의 만남에서 가능하다. 그러므로 편안한 상태에서 앎이란 가능하지 않다. 경계를 만났을 때, 가장 정확한 표지는 감정이다. 사회적 약자들은 자신을 억압하는 상황이나 사람을 만났을 때 '감정적'으로 대응하기 쉬운데, 이건 너무도 당연하다. 감정은 정치의식의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감정이 없다는 것은 사유도 사랑도 없다는 것, 따라서 삶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정(emotion)의 라틴어 어원은 자기로부터 떠나는 것, 나가는 것(moving out of oneself) 즉, 여행이다. 근대의 발명품인 이성이 정적이고 따라서 위계적인 것이라면, 감정은 움직이는 것이고 세상과 대화하는 것이다. 감정의 부재, '쿨'함은 지배 규범과의 일치 속에서만 가능하다. 반응하는 것, 이것이 인간의 모든 느낌, 모든 즐거움, 모든 열정, 모든 생각의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후략)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교양인
p. 23~24 머릿말 中


내 안의 질서가 흐트러져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고 느낄 때 가장 큰 안식이 되어 주는 것은 책이더라. 다시 집어든 정희진씨의 책 속에서 실마리가 되어 줄 구절을 발견하곤 환호했다. 상처는 사랑에서 기인할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그 상처에서 반드시 사유의 싹이 자랄 것이라는 것.. 고맙고 든든한 이 사실들이 내 안의 나를 이해시켜주어 조금씩 스스로를 보듬어 치유해 나갈 수 있게 되길.. :)

휴가 전 고민 :: 2009/07/28 02:00

올 여름 휴가지로 낙점 된 곳은 베트남이다(정확히는 베트남-마카오-홍콩이지만 첫 행선지이자 가장 오래 머물 곳, 그리고 유일하게 처음 가 보는 곳이니 심정적으론 베트남에 가는 것으로만 생각하게 되는 무어 그런 상황). 사실 동행자 S님이 처음 베트남에 가자고 제의 했을 때 선뜻 내키지 않아 주저주저했더랬다. 그런 나의 뜨뜻미지근한 반응에 '왜요, 싫으세요?'라는 질문이 돌아오자 한참만에 찾은 답변은 '용기가 나지 않아서요'였다. 그리곤 '무엇에 맞설 용기가 나지 않는가'에 대한 이런저런 이유들을 주워섬기며, 고민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베트남은 사회주의국가다. 무려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그리하여 그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남다른 사람들이 사는 나라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여행자들을 '등쳐먹지' 않고는 하루하루 끼니를 이어갈 수 없는 사람들로 가득한 나라이기도 하다. 미터기를 조작시켜놓은 '가짜 택시'가 도심을 질주하고, 가방을 도둑맞아 경찰서에 가보면 소매치기와 짠 경찰이 웃으며 '여권만은 돌려주마'하는 여유마저 부리고, 멀리 우리가 떠날 휴양지 무이네의 모래사막 언덕엔 썰매를 태워준다며 포대자루를 들고 졸졸 쫒아오는 어린이들로 가득하다고. 어디 사람만 병들었으랴. 그 유명한 베트남 쌀국수에는 MSG 가득한 조미료가 무려 포대째로 들어간단다. 그 '자랑스런 인민들'이 '자본의 첨병'으로 내몰린 광경, 나는 그걸 마주하는 게 두렵다. '털리는 것' 그 자체도 썩 유쾌하지 않겠지만 소매치기를 당해도 화낼 수 없고 아이들이 졸졸 따라오면 고통스러워하며 그 자리를 뜨기위해 안간힘 써야 할(뭔가를 안 주면 화를 내며 해코지 한단다. 그렇다고 해서 선뜻 주면 그 동네 모든 아이들이 다 따라오게 된다고..) 그 날들이 겁나서 어찌해야할 바를 모르겠다. 그네들에게 해 줄 수 있는게 뭔지도 모르겠고 해 준단들 커다란 변화가 올 것 같지도 않은 현실과 맞서는게 무섭고 싫어서 그저 피하고 싶었던 거다. (그래서 여지껏 여행을 전부 홍콩, 일본 등 별로 불편하지 않은 곳들로만 계속 다녔더랬다)

가기로 결심한 후 하게 된 건 '그나마 내가 나의 처지에 맞게' 해 줄 수 있는 게 뭘지 조금이라도 고민하고 가면 덜 괴로워지지 않을까 싶어 세계화와 빈곤, 슬럼에 대해 찾아보는 것이였다. 다음카페 <'One World Travel Maker 5불 생활자'>에서 읽은 남미 슬럼가에 대한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였다. 한 식구가 있으면 가족구성원 중 남자는 살인자, 여자는 몸을 파는 사람이 된다는 남미 슬럼가에선 식비가 없어 바나나에 버터를 발라먹고 살고 있는 마당에 현금많고 돈 될 물건 투성이인 여행자 털어 가는 쯤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며 자동차를 타고가다 스톱이라도 하는 순간 바로 유리창이 깨지며 피습당할 각오를 해야하니 모험으로라도 절대 가지말라는 이야기는 태양신과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 프리다칼로로 각인되어있는 남미에 대한 환상을 여지없이 부수어주었다. 예전에 사놓고 인제사 읽기 시작한 <세계화를 둘러싼 불편한 진실>은 머릿말에서부터 숨이 턱턱 막혀 도통 진도를 뺄 수가 없다. 최저개발국과 선진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 비율은 1970년 1:19에서 지금은 거의 1:100으로 악화되었단다. '싫으면 너도 부자되든지'는, 이 모든 재앙을 개인의 게으름과 능력부족의 탓으로 몰고가는 최악의 논리다. 갑갑하다.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건 대체 뭐지.

그러다 최근, 하재근 씨가 쓴 이 글을 보고 둔기로 머리를 맞은 것 처럼 멍하니 할 말을 잃었더랬다. 충분히 비난(not 비판)받기 쉬울 법한 요소들이 곳곳에 있는 글이지만 그런 점을 다 차치하더라도 이런 관점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싶은 것이 내게는 자그마하나마 실마리가 되어줬다. 내가 지금 무엇보다 가장 우선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건 그네들의 사기에 모르는 척 자연스레 넘어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보다, 아이들에게 안겨줄 1달러짜리 지폐들을 준비하는 것 보다, 결국 내 주변의 부의 분배와 연관된 현안들에 어떻게하면 보다 섬세하게 귀 기울일 수 있을 것인가- 겠지. 그게 바로 지구 저 편의 아이들에게 '그나마 내가 나의 처지에 맞게' 해 줄 수 있는 것일테다.

아. 아무래도 당비를 올려야겠다.

안철수 교수. 그리고 철학 :: 2009/06/24 01:34

이따금 자기 전 일명 '분노의 훌라후프'를 한다. 작년에 산 무섭게 생긴(돌기가 달려서;;) 훌라후프가 방 한 구석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데 매일 밤 자기 전 몸무게를 체크해보고 '헉 이럴수가'가 되면 집어서 미친듯이 돌리는거다. 돌릴 때 컴터 모니터에 재밌는 영상 하나쯤 틀어놔주는 센스. 그런거라도 봐 주면서 정신을 놓고 해야 그래도 쫌 하게되니.. 쩝. 엊그제 술 고거 쫌 먹었다고(하지만 안주가 치킨 오뎅이였으니 할 말 없음.. 끙) 몸무게가 1kg 늘어버린거다. 또 헉 하면서 훌라후프를 들었다. 돌리기 전 오늘은 무슨 영상을 틀어놀까 하다 문득 며칠 전에 방송된 무릎팍 도사 안철수 편이 그렇게 좋았다던 주위평이 생각나 급구에 성공. 그리하여 보는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아. 사실 내가 안철수 교수님에 대해 아는 사실은 그냥 매스컴을 통해 보여진 지극히 객관적이고 평범한 정보들 뿐이였다. 의사에서 보안전문가로 직업을 바꾼, 선한 인상과 남다른 경영 철학을 갖고 계신 분이라는 정도였을까. 가끔 그 분이 쓰셨다는 글도 언뜻언뜻 보긴 했지만 세상에 '좋은 글'이야 많으니까. 그냥 많고 많은 '좋은 글'중에 하나를 쓴 분이라고만 생각했다.

안철수 교수님은 자기삶의 주도권을 분명하게 쥐고 있기에, 수도승처럼 억누르고 사는 게 아니라 그냥 갖고 계신 세계관 자체가 선함으로 가득차 있어서 그걸 그대로 실천하며 사실 뿐이라는 진실이 영상을 보는 내내 전해져오더라. 이타적으로 살아야한다고 자기 자신에게 주입하는게 아니라 그냥 온 몸을 구성하고 있는 그것이 바로 이타적 유전자겠구나 싶은. 그렇기에 그가 선택한 모든 것들은 당연히 이타적이고 이로운 선택이였으며 후회도 없고 미련도 있을 수 없었겠구나하며 머리가 끄덕여졌다. 아아, 어쩜 그래. 어쩜 그러셔요.

'구성원 모두가 같은 영혼을 가진 기업을 만들고 싶었다'는 말씀이, '내가 조금 먼저 알았으니 혹시나 사회에 환원하면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싶어 공부를 시작했다'는 말씀이 어떤 의민지 희미하게 알 것도 같아서 눈물이 왈칵 났다.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하나의 철학이 관통하지 않으면 절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일관된 삶을 살고 계신 안철수 교수님.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존경한다'는 말을 주저없이 하고 있는 것이구나..

그 분의 인생을 흉내낼 순 없겠지만, 진정 나만의 철학을 찾아 체득하고 그것으로 이루어진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들었다. 가장 나를 나답게 살도록 해 주는 세계관은 무엇일까. 결국은 삶 전체가 그 것을 찾아 헤메고 완성해 나가는 하나의 커다란 모험이겠지만. 고민의 끈을 놓고 누군가 쥐어준 것만을 내 것인양 착각하며 삶을 갉아먹으려는 타협을 하지 않게 되길. 그리고 그 답으로 시대와 사회의 요구에 부끄럽지 않게 응답할 수 있게 되길..

굿바이 노무현 :: 2009/05/23 15:36

토요일 아침. 느즈막히 일어나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의 정적을 깨기 위해 리모콘을 들어 on을 누르고 나서, 화면위로 흐르는 충격적인 소식에 그만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떨리는 손으로 다른 채널로 또 다른 채널로 연거푸 채널을 돌려봐도 모두 같은 소식만을 전하고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선거가 있었던 해 당시 나는 미성년자라 투표권이 없었다. 후에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야 그의 당선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알게 됐고 비록 내 손으로 뽑은 대통령은 아니였지만 마음 속으로나마 잔잔한 응원을 보내게 됐다. 물론 당선 후 그의 행보는 대부분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중요한 건, '저들이 아닌' 그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는 사실이였기에 나는 그 상징성만으로도 그를 비판적 지지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여겼다.

몇달 전 '박연차 게이트' 이야기를 전해 듣고 나서, 끝끝내 한겨레21이 표제를 '굿바이 노무현'으로 뽑아든 걸 보고 나서, 한때 많은 이들의 영웅이자 작은 희망의 불씨와도 같았던 그가 결국 비리 사건에 연루돼 타들어가게 된 이 현실이 답답해 가슴을 쳤다. 바보, 멍청이, 나쁜놈. 저들의 잘못은 티끌이지만 당신의 잘못은 들보가 될 수 있다는 걸, 당신은 정녕 몰랐단 말이냐. 바보, 바보, 바보..

그 바보 멍청이 나쁜놈이 택할 마지막이, 자살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그 보다 조금 더, 아니 매우매우 나쁜 짓을 저지른 이들이 세상 부끄러운 줄 모르고 버젓이 배두드리며 살고 있는데. 가책을 느껴도 그보다 조금 더, 아니 훨씬훨씬 많이 느껴야 할 독재자며 학살자며 고문관이며 사기꾼이며 성범죄자도 얼굴 색 하나 흐트러짐 없이 얼굴 내놓고 살고 있는데....

뉴스를 보며 울어본 게 얼마만인가.

미련과 분노와 애증때문에 당신을 보내는 맘이 편치않지만, 당신은 시대가 당신의 어깨에 쌓아올린 그 많은 무게들을 모두 내려놓고 그 곳에서 편하게 잠들었으면 좋겠다. 굿바이 노무현. 이제 정말, 굿바이..

분할과 요행수 :: 2009/03/19 02:27

"지배세력들은 계속 시민들을 분할하려 한다. 시민들도 경쟁사회에서 내가 사는 길로 연대 보다는 나만의 요행수를 찾으려는 속성이 있다. 그런 식으로 철거민이 죽었고, 비정규직도 실업자들도 생존의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다. 분노는 하지만, 이를 저항으로 표출하고 세상을 바꾸려는 희망을 보지 못하고 있다."

한겨레21 752호 21p
"살인진압 후 50일, 연대가 아쉽다" 中

회사에서 종류별로 신문을 구독하기 시작하면서 한겨레신문과 함께 들어오게 된 한겨레21- 을 오늘에서야 발견하곤 집어와 퇴근길에 읽다 만난 기사 가운데에서. 이 구절을 읽는데, 순간 많은 장면들이 오버랩되면서 정신이 아득해졌다. 최근의 내가 아둥바둥대며 찾기 위해 노력했던 게 결국 '나만의 요행수'였겠구나. 결국 나도 그랬던 거구나. '어쩔 수 없다'는 말보다 더 무기력하고 슬픈 말이 또 있을까. 맘이 무거워졌다.

이렇게나 현실은 또렷한데 :: 2009/02/11 01:12

이번주엔 어쩌다보니 이틀 연속 꽃남을 '닥본사' 하게 됐다. 언제는 안 그랬냐만 오늘은 비현실적 전개의 끝을 달리더만. 아니 녀석들이 하제인지 제하인지 하는 애한테 얻어 터져가며 사랑 확인해서 일단 사건사고 하나 끝났는가 싶더니 이번엔 급 잔디 아버지 사채업자한테 끌려간거다? 그래서 잔디 엄마가 자존심 다 버리고 소금까지 머리에 부어가며 어렵게 어렵게 받아온 돈을 아빠가 장기매매-_- 당할지도 모른다는 상황에서 그네 몇 번 까딱 타곤 가족의 결정이네 뭐네 하며 되돌려주네? 되돌려줬으면 아빠 다시 끌려가야 하는거 아닌가?; 아빠가 끌려가긴 커녕 딸은 또 급 아무렇지 않게 친구들과 스키장엘 놀러가고 사랑의 정표; 분실하고 덕분에 또 둘이 완전 틀어지네. 아 근데 또 웬 조난에 구조에 다시 사랑확인에 -_-.. 아 제발 좀. 이제 사건이 터질 조짐이 보여도 15분 뒤 해결될 거 아니까 별로 놀랍지도 않고, 둘이 너 같은 애 다신 보고 싶지 않다느니 니가 질렸다느니 해도 15분 뒤 오해풀 거 아니까 '작작 좀 하지?' 소리가 절로 나오잖우. 쩝.

그나저나 이렇게 비현실적 세계에 둥둥 떠 있다가 끝나고 채널 돌리던 중 우연히 피디수첩을 보게 된거라. 시작부터 오늘의 주요 내용들이 줄줄 브리핑되어 나오는 데 불과 몇 분만에 아무렇지 않게 펼쳐지는 또렷한 현실세계의 현실을 직시하려니 맘이 좀 그렇더라. 오늘 방송된 내용은 용산참사와 미네르바구속수사 그 이후 남은 의혹들에 대한 심층분석이였다. 용산 현장에 용역들이 투입됐단 건 거의 기정사실화 됐더라. 화장실 다녀온 사람들이였다느니 하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이 더욱 진실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고. 미네르바는 구속 이후 까맣게 잊고 있었더니만 미네르바를 구속하게 된 결정적 이유인 '허위사실 유포'에 하등의 근거가 없음이 밝혀졌다네. 사실을 허위라고 주장하는 걸 보면 정말 누군가 간절히 그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길 원치 않았다는 것 밖에 더 되나. 참으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일세.

드라마며 현실이며 할 것 없이 참 어처구니 없는 허무맹랑함으로 가득하구나. 헌데 현실의 허무맹랑함은 너무도 날카롭고 잔인해서 차라리 꽃남의 포근하고 달달한 허무맹랑함에 머물고 싶네. 하지만 또렷한 현실은 이렇게나 버젓이 내 손이 닿는 곳에 존재하고 있거늘 달아난다고 해서 진정 달아날 수 있을까. 잔인함과 직면할 수 있는 용기를 달달함에서 찾을 수 있게 되길. 문득, 다짐하게 되는 밤이다.

자기확신과 자존감 :: 2008/12/18 02:23

어른이 되자! 내가 누군지 알고 살자!
[매거진 esc] 김어준의 그까이꺼 인터뷰



...(전략)

정혜신 : 당연한 거 아닐까? 나는 인간의 정신은 진화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물질적으로는 이전 세대가 이뤄놓은 게 후세의 생활에 편입되고 또 다음 단계에 올라가는 식으로 축적, 진화되지만 정신은 아니다. 부모의 학식이 자식에게 편입되는 게 아닌 것처럼. 모든 인간이 자기가 직접 체험해 보기 전에는 이해도 안 되고 설득도 안 된다. 그런데 요즘 주변을 보면 직접 몸으로 부딪치거나 자신을 시험할 수 있는 과정이 철저히 봉쇄된다. 겪은 만큼 성장하고 시행착오나 실수도 해보면서 이걸 해석하고 자기 확신으로 연결되는 순환고리가 있어야 하는데 곳곳이 막혀 있다. 사회적, 문화적, 가정적으로 모두 말이다.

김어준 : 결국 공교육의 문제와 연결된다. 우리 교육은 상위 1프로를 뺀 나머지를 낙오자로 만드는 시스템이다. 패배의식을 체계적으로 내면화한다. 명품 유행도 그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낙오자가 된 99프로가 비싼 가방 메고 잠시라도 일류라는 착각과 위로를 받는 거지. 그래서 명품은 우리나라에서 과소비가 아니라 정신적 위로다.

정 : 불안이 없으려면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하는데 자기를 느껴 볼 수 있어야 자기 확신도 생긴다. 연애 등의 인간관계나 여행, 예술적 체험 같은 게 다 온몸의 세포가 살아나는 경험인데 우리는 이런 것들을 맨 뒤로 밀어놓는다. 인간관계만 해도 살아가는 데 그보다 중요한 재산이 없는데 학원 가고 칠판 보느라 관계맺기의 훈련도 당연히 밀린다. 흔히 성공한 사람이라고 해도 내면적으로는 불행한 경우가 많은데, 대다수는 관계가 안 되기 때문이다. 이건 제대로 관계 맺을 수 있는 각성된 개인, 즉 ‘어른’이 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결혼의 갈등도 같은 거다.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어른’이 아니면 사랑을 유지해나갈 수가 없다.

김 : 멋진 말이다. 이거 내 말로 써 달라.(웃음)

정 : 그래서 심리 상담을 다르게 표현해 보자면, 내게 물어봐야 할 나에 관한 중요한 질문을 엉뚱한 사람에게 하고 있다는 걸 자각하도록 돕는 과정인 거다. 스스로 생각해서 어떤 깨달음을 얻는 순간에는 스몰 쇼크를 느낀다. 심리 관련 책을 읽으며 자기를 대입시켜 보면서 경험하는 지적인 깨달음과는 다른 유의 충격이다. 감성적 깨달음은 언제나 충격을 동반한다. 기업가들 상담을 할 때 ‘그때 당신은 뭘 느꼈나’ 물어보면 갑자기 사람이 멍해진다. 그러고는 느낌이 아닌 생각을 말한다. 그럼 재차, 생각 말고 당신의 느낌을 말해 달라고 하면 다시 블랙아웃이 된다. 그렇게 정지된 순간을 직접 느끼게 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거다. 내가 이런 존재구나, 내가 느낌 하나 없이 살아왔구나 하는.


자신감과 자존감의 차이

김 : 그 말은 내 식대로 말하면, 사람들이 자기가 누군지 모른다는 거다. 영화 <데어 데블>을 보면 주인공이 장님인데 소리가 공간에서 부딪혀 돌아오는 걸 감지해 그 윤곽으로 상황을 파악한다. 그처럼 자기가 했던 행동이나 결정 등이 반향을 일으켜서 내게 되돌아와 만드는 윤곽선이 바로 자신이다. 그중에는 맘에 안 드는 것도 있지만 그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다. 그걸 받아들이면서 자신에 대한 관심이나 잘 보이려고 과도하게 하는 노력이 사라지며 만들어지는 게 자존감이고.

정 : 관심이 없어진다기보다 자기에 대한 타인의 시선에 매달리지 않게 되는 거지.

김 : 같은 말이다.(웃음)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존감과 자신감을 헷갈린다. 20대의 나를 생각하면 자신감은 있었다. 내 능력에 대한 신뢰. 하지만 그걸 남한테 입증해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30대를 넘어가면서 나를 입증해 보이겠다는 강박이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정 : 어떤 계기가 있었나?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도 마음의 변화 같은?

김 : 특별한 사건은 없었다.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어느 날 문득 보니 내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남의 승인 필요 없이 그저 내가 생겨먹은 대로 즐겁게 살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20대엔 내가 이 정도입니다, 봐 주세요 하고 살았는데, 어느 날 그런 생각 자체를 깡그리 잊고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며 그로부터 즐거움을 누리는 데 집중하고 있더라.

정 : 그런 확신을 스스로 했기 때문에 외부에 연연하지 않는 거다. 돈이냐 사랑이냐의 문제도 고명한 선생님한테 물어봐서 답을 얻는 게 아니라 총수처럼 ‘제대로, 또박또박’ 살다 보면 자명해지는 거다. 절대적으로 내가 나를 느껴서 얻는 게 자존감이라면, 자신감은 외적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

김 : 자신감은 사실 동전의 양면처럼 패배의식을 동반한다. 외부에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조건이 제시되면 무너질 수밖에 없으니까. 예를 들어 공부 잘해 남에게 인정받아 만들어진 자신감은 나보다 공부 잘하는 놈 앞에서 무너지게 되어 있다. 하지만 스스로 구축한 자존감은 남의 승인이 필요 없다. 물론 남이 날 좋게 봐 줬으면 하는 거야 누구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니어도 자존감이 튼튼하면 나는 그대로다.

정 : 그렇게 자존감이 내재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뭔가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땐 내부 시그널도 금방 온다. 스스로를 견제하는 자아가 빠르게 작동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남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된다. 그러다 보면 불행하게 살 가능성도 낮아진다. 외적 상황이 자신을 몰아가도 스스로 그렇게 안 살도록 결정하게 되니까. 많은 부부들이 관계가 안 좋아도 애가 결혼할 때까지만 참고 산다고 하는데, 그런 환경에서 자란 애가 행복하게 살 가능성은 무척 낮다. 부모의 행복하지 않은 삶을 공기처럼 마주하며 자란 아이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행복을 삶의 예외적인 상황으로 간주하게 된다. 그래서 자기가 불행해져도 문제의식이 별로 없다. 불행을 쉽게 수용한다. 행복을 느끼고 사는 부모와 산 아이는 자기 삶이 그런 조건에서 벗어나면 자기 안의 경계경보가 빠르게 작동한다. ‘내 삶이 왜 이래? 이건 아니잖아’ 한다.

(후략)...

기사등록 : 2008-12-17 오후 06:07:49
ⓒ 한겨레 (http://www.hani.co.kr)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와 정신과전문의 정혜신 씨의 대담 중 일부. 온 몸의 세포가 곤두서는 느낌이다.

더는 응원하기 벅찬, 강의석 :: 2008/10/03 22:17

강의석의 팬이였던 때가 있었다. 미션스쿨에서 중학시절을 보낸 사람으로서 강의석의 문제제기에 진심으로 공감했고 또 환호했었다. 그는 대학에 가서도 청소년 인권단체에서 다양한 활동을 했는데 거기서 만난 친구와 참 예쁘게 연애하는 모습을 (미니홈피를 통해)보며 조금은 부러워하기도 했더랬다. 대학시절 학교신문사에서 후배애들이 강의석을 취재하러 다녀온 뒤 들려준 후기를 바탕으로 포스팅을 했었는데 어찌하다 그 글을 바로 그 여자친구가 보게되어 댓글로나마 대화를 나누며 즐거워했었던 기억도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부턴가 그의 행보를 지켜보는 일이 썩 편하지만은 않게 되었다. 휴학 후 단지 호기심에 택시기사에서부터 권투선수, 호스트바 종업원에 이르기까지 짧은 기간내에 마음대로 직업을 바꾸는 모습이 조금은 사치스럽게 여겨진 탓이였다. 누군가에게는 생존이 달린 문제가 누군가에게는 잠깐 체험(?)하고 마는 호기심의 대상이 된다니. 거기에 같은 과에서 만난 여자친구와의 잠자리에서 있었던 일들을 미니홈피에 상세하게 적어올렸다는 사실이 일파만파 퍼지자 그가 주장해 온 소위 '인권'에 대한 진정성마저 의심하게 됐다.(루머라는 이야기가 있으니 패스합니다) 그랬던 그가 조만간 올누드로 시위를 벌이겠다고 얘기했을때, 나는 차라리 그가 내가 알던 강의석이 아니길 바랐다. 많은 이들이 대한민국의 군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만 그 어떤이도 의사표현의 방법으로 '누드 거리시위'를 택하지 않았다. 그들이 '벗을 줄 몰라서'는 당연히 아닐테고, 고민하건대 그 방법은 자칫 진정성에 대한 오해를 빚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 아닐까. 아니나다를까 어제 하루 온 동영상포탈 메인은 '김연아빵', '100점 만점에 4점' 동영상과 더불어 '강의석 누드'라는 새로운 누드 동영상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어쩌면 그는 인권운동가들의 '지능적 안티'인걸까.

주장하는 바가 아무리 정당해도 그런식으로 왜곡될 수 있는 방법은 되려 인권운동계를 욕먹게 할 뿐이다. 진심으로 군대문제를 논하고 싶다면 그는 '미디어 속으로'가 아닌 '대중들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닐까.

영악한 처세가 - <88만원 세대>의 공저자 박권일씨의 강의석론
알몸의 강의석, 그에겐 진정성이 없다 - 오마이뉴스

이상형 :: 2008/09/28 02:43

모름지기 이상형이란 늘 바뀌기 마련. 뭐 취향이 바뀌어서 일 수도 있고, 아님 간절해지는 항목(?)이 달라져서 일 수도 있고. 이번에 정해진(나도 모르게 정해'졌'다)이상형은, 결국 여지껏 그려왔던 모든 바람의 총체적 결론인 듯 싶다. 뭐 다시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건강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졌다. '신체 튼튼'도 좋지만 내가 원하는 건 '마음 튼튼'.

상처에 쉽게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너진다 해도 스스로 바른 치유법을 갖고 있거나 혹은 가지려고 노력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좋겠다. 누구에게나 가슴 속에 크든 작든간에 상처가 하나 쯤은 있기 마련이지만(누나 가슴에 삼천원쯤은 있다, 는 모 배우의 명대사가 생각나 주시고 -.-) 그걸 어떤 방법과 어떤 방향으로 치유해 내느냐에 따라 개개인의 인성이 참 많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고 있는 요즈음이다.

결국 중요한 건 '그 상처와 대면할 용기를 가졌느냐 아니냐'려나. 그럼 용기의 근원은 어딜까. 자아존중감일까.

이렇게 써놓고 보니 뭔가 나는 '마음 완전 튼튼'해서 이러는 것으로 오인;받을 수도 있겠지만.. 곰곰 따져보면 결국 이건 요즈음의 내가 지향하는 바, 인 셈이다. 그래서, '이상형'이다.

주말 올림픽 관전기 :: 2008/08/11 03:22

1. 넌 아무 것도 하지마, 라는 구호가 새삼 뼈저리게 와 닿는 주말.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태극기를 뒤집어 들고  대체 그게 뭥미. 어쩌면 관심 1그램을 노리고 부러 저런 짓을 한 건 아닐까 심각하게 의심된다능. 덕분에 온 블로고스피어와 뉴스, 포탈의 중심이, 무려 올림픽 와중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로 쏠리고 있으니. 해맑게 웃으며 국기를 흔들고 있는 이명박의 모습에서, 컴백 직전부터 간호사 성적 희화네 뮤비 표절이네 등으로 화제의 중심에 서며 성공적으로 이슈퀸으로서의 입지를 다진 효리언니 그 이상의 섹시함-_-이 느껴졌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이 강렬한 선정미-_-를 대체 어쩌면 좋을꼬.

2. MB가 스치고 지나가도-_- 우리 태환이는 부정;타지 않고 1등먹었구나. 아이고 엉엉. 님 좀 짱인듯. 저녁땐 여자양궁 결승도 봤는데 와 정말 님들도 짱이더라. 비바람이 몰아쳐도 굴하지 않고 척척 9점 10점을 쏘아맞추다니. 결승 마지막 샷에 1점 이상만 쏴도 우승인 상황이였음에도 통쾌하게 10점짜리 날려주는 거 보면서 입을 못 다물고 쓰러졌다. 여기에 일명 '그래서 나온게 시리즈'까지 읽고나니, 과연 대한민국 양궁선수들은 사람이 아니구나 싶더라. 그나저나 왜, 대체 왜 우리나라 사람들이 양궁에 강한걸까? 딱히 종주국..... 이라기엔 화랑의 후예들인겐가;; 음. 뭔가 국민성에서 답을 찾아보자니 내 집중력으론 답이 안 나와서 패스;;

3. 사실 올림픽 전까지만 해도 국민적 관심사가 죄 여기로 쏠릴 거라 생각치 않았더랬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관심사려나-_-; 평소 좋아하지도 않는 스포츠 경기 중계를, 단지 전세계인과 모여서 하는게 차이라면 차이인 그것을, 굳이 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거든(그리고 나같은 인간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던게지;;). 근데 매 올림픽때며 월드컵때마다 그랬지만, 어쩐지 이런 시즌엔 꼬박꼬박 챙겨봐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고 또 막 그렇게 된다? 게다가 가만 보다보면 무려 마이너 중의 마이너인 필드하키 중계마저 재밌어!; 쩝. 덕분에 주말내내 잘 낚여;주었다. 그치만 올림픽으로 '세계가 하나'되고 '온 국민이 하나'되는 걸 마냥 흐뭇하게 바라보기엔 뭔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혹여나 다른 이슈들이 묻히고 있지는 않은지, 부지런히 살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