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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면, 선택은 제르미 :: 2009/11/22 23:12
이제 종영까지 일주일밖에 남지 않아서(사실 날짜로 따지면 일주일도 안 남았군아 T_T).. 이렇게 우물쭈물하다가는 그냥 생각들을 다 날릴 것 같아 그냥 되는대로 미남이시네요 이야기 끄적끄적.
여기 나오는 세 남자(태경, 신우, 제르미)는 셋 다 고미남을 좋아하지만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은 제각각이다. 태경은 자신이 고미남에게 빠져들고 있다는 걸 애써 부정하며 가시 돋친 표현들로 포장한 속내를 무심한 듯 시크하게 아닌 척 툭 던진다. 신우는 가장 먼저 빠졌으면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듯 없는 듯 곁에서 맴돌며 '흑기사'를 자처하기만 할 뿐 고백 타이밍이 와도 제대로 고백하지 못하다 뒤늦게서야 빙 돌려 말하고 만다. 마지막으로 제르미. 제르미는 '영국 교포'라는 타이틀 아래 가장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끊임없이 고미남에게 감정을 표현한다. 상대가 사랑스러운 행동을 했을 땐 와락 안아주고, 상대가 감기에 걸렸을땐 호들갑스럽게 약도 챙겨주고, 마지막에 비록 태경과 미남이 이어졌단걸 알고나서야 하긴 했지만 셋 중 유일하게 미남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써서 마음을 표현한 사람이기도 하다.
태경과 신우는 혹여 자신이 상처받을까 아예 상대에게 희생을 강요하거나 그 반대로 스스로 희생하는 방식을 택한다. 그 배경엔 물론 과거 버림받은 상처(태경은 부모로부터, 신우는 첫사랑한테 개잡-_-았냐고 해서)가 깔려있지만, 어찌되었건 결국 둘 다 똑같이 이기적인 방어적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게다. 고미남이 고미남 그 자체로 행복하기 위해선 재지 않고 꾸밈없이 감정을 표현하는 제르미같은 사람을 만나는 게 가장 좋겠다.... 고 처음부터 생각해왔다. 그런데 고미남은 태경이를 선택한 것이고.. 그래서 우리 제르미는 펑펑 울어야 했던 것이고.. T_T;;
돌이켜보면 내가 본 트랜디드라마 속 남녀 갈등구조 관계는 늘 이런 식이였다. 궁의 신-율-채경이 그랬고, 꽃남의 준표-지후-잔디가 그랬고. 각 드라마 속 두 남자들은 모두 과거 아픈 기억을 안고 있었고(신, 율, 준표, 지후 모두 가족문제)상처받을까 두려워하며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그런 남자들 사이에서 갈등하다 여주인공은 모두 '좀 더 개선시켜야 할 부분이 많이 보이는' 쪽을 택한다. 아무래도 억압된 욕망을 거칠게 발산하는 부류보다 차분히 삭히는 쪽이 더 안정되어 보일테니. 하지만 이것이 답일 수 없는 이유는, 일단 신우도 그리 안정적인 캐릭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남 14회에서 보여진 신우의 모습은 태경이 못잖게 제멋대로였다. 어째서 미남의 감정(태경에 대한 마음)을 인정하려들지 않는게냐고! 그건 '그만큼 희생해줬음에도 받아주지 않으니 이젠 억울해서라도 쟁취하고 말겠다'는 모습 그 이상도 이하로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연애가 '구원의 만병통치약'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 배경이 구구절절해도 연애상대는 그 상처까지 모두 받아 안아야 할 의무를 갖고 있는 건 아니니까. 게다가 상처는 오직 과거의 아픈 기억과 오롯이 마주할 때 치유할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은 누군가의 희생과 도움으로가 아닌 결국 자기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문제다.
이렇게 세상,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는 남자 캐릭터들 사이에서 제르미 같은 남자애의 등장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자신의 감정을 왜곡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꾸밈없이 표현할 줄 아는 제르미. 제르미가 그런 캐릭터일 수 있는 건 전통적으로 강요받는 남성성으로부터 자유롭기('영국교포'라는 이름하에 면제받았기) 때문일테다. 형님들이 미남에게 다가가는 방법은 주로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기사도정신을 발휘하거나 과묵하게 모른 척 덮어주기지만 제르미가 미남에게 다가가는 방법은 미남이 기운빠져 있을 때 자기가 좋아하는 마을버스를 태워주거나 함께 아이스크림 먹기, 강아지와 놀기 등이다. 연애를 함에 있어 성역할 놀이(내지는 우위선점놀이?;)로부터 이탈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캐릭터기에 심지어 미남이 남자인 줄 알았던 때에도 자신이 미남에게 끌리고 있음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아, 이런 남자애라니.
하지만 이렇게 제르미는 트랜디드라마 속 보기 드문 완소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어린이 취급을 받으며 멜로 구도에서 형님들에게 밀려났고, 미남은 소통이 서툰 두 남자 사이에서 진짜 여자친구와 가짜 여자친구 노릇을 하며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고 있다. 아아. 이건 정말이지 고문이 따로없다. 하지만 그가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아마도, 이건 드라마이기 때문일테다. 잘 생긴 상처남이 평범한 여자를 만나 치유돼 '잘생긴데다 마음까지 건강한 남자'로 거듭난다면 그보다 감동적인 일이 없을테니. 휴.
그렇지만 미남아.
부디 현실에서 사랑한다면, 제르미를 선택해다오. 이 언니는 네가 부디 행복하길 빈다. 진정으로 T_T..
요거슨 짤방..
상처로부터 자라나기 :: 2009/09/22 23:51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랑받을 때보다 사랑할 때, 더 행복하고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사랑하는 고통으로부터 자신의 크기, 깊이를 깨닫는다.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포함해 모든 대화는 최음제이며, 인생에서 깨달음만한 오르가슴은 없다. 상처와 고통은 그 쾌락과 배움에 대해 지불하는 당연한 대가이다. 사랑보다 더 진한 배움(intensive learning)을 주는 것이 삶에 또 있을까. 사랑받는 사람은 배우지 않기 때문에 수업료를 낼 필요가 없다. 사랑은 대상으로부터 유래-발생하는 에너지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 내부의 힘이다. 사랑하는 것은 자기 확신, 자기 희열이며, 사랑을 갖고자 하는 것은 권력 의지다. 그래서 사랑 이후에 겪는 고통은 사랑할 때 행복의 일부인 것이다.
사랑하는 것은 상처받기 쉬운 상태가 되는 것이다. 상처에서 새로운 생명, 새로운 언어가 자란다. '쿨 앤 드라이'. 건조하고 차가운 장소에서는 유기체가 발생하지 않는다. 상처받은 마음이 사유의 기본 조건이다. 상처가 클수록 더 넓고 깊은 세상과 만난다. 돌에 부딪친 물이 크고 작은 포말을 일으킬 때 우리는 비로소 물이 흐르고 있음을 깨닫게 되며, 눈을 감고 돌아다니다가 벽에 닿으면 자기가 서 있는 위치를 알게 된다. 이처럼 앎은 경계와의 만남에서 가능하다. 그러므로 편안한 상태에서 앎이란 가능하지 않다. 경계를 만났을 때, 가장 정확한 표지는 감정이다. 사회적 약자들은 자신을 억압하는 상황이나 사람을 만났을 때 '감정적'으로 대응하기 쉬운데, 이건 너무도 당연하다. 감정은 정치의식의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감정이 없다는 것은 사유도 사랑도 없다는 것, 따라서 삶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정(emotion)의 라틴어 어원은 자기로부터 떠나는 것, 나가는 것(moving out of oneself) 즉, 여행이다. 근대의 발명품인 이성이 정적이고 따라서 위계적인 것이라면, 감정은 움직이는 것이고 세상과 대화하는 것이다. 감정의 부재, '쿨'함은 지배 규범과의 일치 속에서만 가능하다. 반응하는 것, 이것이 인간의 모든 느낌, 모든 즐거움, 모든 열정, 모든 생각의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후략)
p. 23~24 머릿말 中
내 안의 질서가 흐트러져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고 느낄 때 가장 큰 안식이 되어 주는 것은 책이더라. 다시 집어든 정희진씨의 책 속에서 실마리가 되어 줄 구절을 발견하곤 환호했다. 상처는 사랑에서 기인할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그 상처에서 반드시 사유의 싹이 자랄 것이라는 것.. 고맙고 든든한 이 사실들이 내 안의 나를 이해시켜주어 조금씩 스스로를 보듬어 치유해 나갈 수 있게 되길.. :)
2009 여름휴가 보고 :: 2009/08/23 21:36
베트남 무이네의 화이트 샌듄. 모래사막과 호수의 아이러니한 조화.
베트남 호치민시티의 인민회청사. 앞에 있는 동상의 주인공은 호치민.
마카오의 세나도광장. 릴세나도빌딩에 올라서.
마카오의 마카오타워와 다리. 펜하성당 앞 공원에서.
홍콩의 리펄스베이 끝 산책로.
홍콩의 빅토리아피크에서 내려다 본 야경.
무이네 피싱빌리지에서. 레스포삭 여행용 크로스백 하나씩 둘러메고 찰칵.
무이네 요정의 샘길을 따라 걷다가. 어째서 남녀의 발 같아 보이는 걸까..-_- 까무잡잡한 쪽이 나.
2009. 8. 15 ~ 22
Vietnam(Muine, Ho Chi Min City) - Macao(Macao, Coloane) - Hongkong(Hongkong Island)
Happy PJT
자기확신과 자존감 :: 2008/12/18 02:23
[매거진 esc] 김어준의 그까이꺼 인터뷰
...(전략)
정혜신 : 당연한 거 아닐까? 나는 인간의 정신은 진화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물질적으로는 이전 세대가 이뤄놓은 게 후세의 생활에 편입되고 또 다음 단계에 올라가는 식으로 축적, 진화되지만 정신은 아니다. 부모의 학식이 자식에게 편입되는 게 아닌 것처럼. 모든 인간이 자기가 직접 체험해 보기 전에는 이해도 안 되고 설득도 안 된다. 그런데 요즘 주변을 보면 직접 몸으로 부딪치거나 자신을 시험할 수 있는 과정이 철저히 봉쇄된다. 겪은 만큼 성장하고 시행착오나 실수도 해보면서 이걸 해석하고 자기 확신으로 연결되는 순환고리가 있어야 하는데 곳곳이 막혀 있다. 사회적, 문화적, 가정적으로 모두 말이다.
김어준 : 결국 공교육의 문제와 연결된다. 우리 교육은 상위 1프로를 뺀 나머지를 낙오자로 만드는 시스템이다. 패배의식을 체계적으로 내면화한다. 명품 유행도 그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낙오자가 된 99프로가 비싼 가방 메고 잠시라도 일류라는 착각과 위로를 받는 거지. 그래서 명품은 우리나라에서 과소비가 아니라 정신적 위로다.
정 : 불안이 없으려면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하는데 자기를 느껴 볼 수 있어야 자기 확신도 생긴다. 연애 등의 인간관계나 여행, 예술적 체험 같은 게 다 온몸의 세포가 살아나는 경험인데 우리는 이런 것들을 맨 뒤로 밀어놓는다. 인간관계만 해도 살아가는 데 그보다 중요한 재산이 없는데 학원 가고 칠판 보느라 관계맺기의 훈련도 당연히 밀린다. 흔히 성공한 사람이라고 해도 내면적으로는 불행한 경우가 많은데, 대다수는 관계가 안 되기 때문이다. 이건 제대로 관계 맺을 수 있는 각성된 개인, 즉 ‘어른’이 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결혼의 갈등도 같은 거다.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어른’이 아니면 사랑을 유지해나갈 수가 없다.
김 : 멋진 말이다. 이거 내 말로 써 달라.(웃음)
정 : 그래서 심리 상담을 다르게 표현해 보자면, 내게 물어봐야 할 나에 관한 중요한 질문을 엉뚱한 사람에게 하고 있다는 걸 자각하도록 돕는 과정인 거다. 스스로 생각해서 어떤 깨달음을 얻는 순간에는 스몰 쇼크를 느낀다. 심리 관련 책을 읽으며 자기를 대입시켜 보면서 경험하는 지적인 깨달음과는 다른 유의 충격이다. 감성적 깨달음은 언제나 충격을 동반한다. 기업가들 상담을 할 때 ‘그때 당신은 뭘 느꼈나’ 물어보면 갑자기 사람이 멍해진다. 그러고는 느낌이 아닌 생각을 말한다. 그럼 재차, 생각 말고 당신의 느낌을 말해 달라고 하면 다시 블랙아웃이 된다. 그렇게 정지된 순간을 직접 느끼게 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거다. 내가 이런 존재구나, 내가 느낌 하나 없이 살아왔구나 하는.
자신감과 자존감의 차이
김 : 그 말은 내 식대로 말하면, 사람들이 자기가 누군지 모른다는 거다. 영화 <데어 데블>을 보면 주인공이 장님인데 소리가 공간에서 부딪혀 돌아오는 걸 감지해 그 윤곽으로 상황을 파악한다. 그처럼 자기가 했던 행동이나 결정 등이 반향을 일으켜서 내게 되돌아와 만드는 윤곽선이 바로 자신이다. 그중에는 맘에 안 드는 것도 있지만 그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다. 그걸 받아들이면서 자신에 대한 관심이나 잘 보이려고 과도하게 하는 노력이 사라지며 만들어지는 게 자존감이고.
정 : 관심이 없어진다기보다 자기에 대한 타인의 시선에 매달리지 않게 되는 거지.
김 : 같은 말이다.(웃음)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존감과 자신감을 헷갈린다. 20대의 나를 생각하면 자신감은 있었다. 내 능력에 대한 신뢰. 하지만 그걸 남한테 입증해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30대를 넘어가면서 나를 입증해 보이겠다는 강박이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정 : 어떤 계기가 있었나?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도 마음의 변화 같은?
김 : 특별한 사건은 없었다.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어느 날 문득 보니 내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남의 승인 필요 없이 그저 내가 생겨먹은 대로 즐겁게 살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20대엔 내가 이 정도입니다, 봐 주세요 하고 살았는데, 어느 날 그런 생각 자체를 깡그리 잊고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며 그로부터 즐거움을 누리는 데 집중하고 있더라.
정 : 그런 확신을 스스로 했기 때문에 외부에 연연하지 않는 거다. 돈이냐 사랑이냐의 문제도 고명한 선생님한테 물어봐서 답을 얻는 게 아니라 총수처럼 ‘제대로, 또박또박’ 살다 보면 자명해지는 거다. 절대적으로 내가 나를 느껴서 얻는 게 자존감이라면, 자신감은 외적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
김 : 자신감은 사실 동전의 양면처럼 패배의식을 동반한다. 외부에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조건이 제시되면 무너질 수밖에 없으니까. 예를 들어 공부 잘해 남에게 인정받아 만들어진 자신감은 나보다 공부 잘하는 놈 앞에서 무너지게 되어 있다. 하지만 스스로 구축한 자존감은 남의 승인이 필요 없다. 물론 남이 날 좋게 봐 줬으면 하는 거야 누구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니어도 자존감이 튼튼하면 나는 그대로다.
정 : 그렇게 자존감이 내재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뭔가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땐 내부 시그널도 금방 온다. 스스로를 견제하는 자아가 빠르게 작동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남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된다. 그러다 보면 불행하게 살 가능성도 낮아진다. 외적 상황이 자신을 몰아가도 스스로 그렇게 안 살도록 결정하게 되니까. 많은 부부들이 관계가 안 좋아도 애가 결혼할 때까지만 참고 산다고 하는데, 그런 환경에서 자란 애가 행복하게 살 가능성은 무척 낮다. 부모의 행복하지 않은 삶을 공기처럼 마주하며 자란 아이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행복을 삶의 예외적인 상황으로 간주하게 된다. 그래서 자기가 불행해져도 문제의식이 별로 없다. 불행을 쉽게 수용한다. 행복을 느끼고 사는 부모와 산 아이는 자기 삶이 그런 조건에서 벗어나면 자기 안의 경계경보가 빠르게 작동한다. ‘내 삶이 왜 이래? 이건 아니잖아’ 한다.
(후략)...
ⓒ 한겨레 (http://www.hani.co.kr)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와 정신과전문의 정혜신 씨의 대담 중 일부. 온 몸의 세포가 곤두서는 느낌이다.
슬픈, 마왕 :: 2008/12/14 04:11
주지훈의 작품 고르는 안목을 믿고 마왕을 선택, 지난 주말부터 이번 주말까지해서 드뎌 다 봤다. 지난 주에 15화까지 봤을 땐 한 회 한 회 넘어갈 때 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에 땀이나서 죽을 것 같았는데 일주일 쉬었다 보니까 좀 볼 만 해 지더라. 숨 고르면서 자알 봤다.
추리극 같으면서도 결국은 심리극인게 좋았다. 앤티크랑 비슷한 점이기도 한 것이. 초반에서부터 이미 범인은 짐작이 가고 결론도 알 만 한데 그냥 주인공이 갈등하면서 심적변화를 겪는 과정 하나하나가 절절하게 와 닿아서 끝까지 몰입하게 되더라. 예전에 한 선배가 쓴 감상 뒤적여보니까 오수가 죄를 지어놓고도 '왜 난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거야'모드인 걸 보고 이해가 안 간다느니 남 탓만 하는 찌질이라느니 하는 타 시청자; 감상도 많았다던데. 나 역시 선배처럼 처음부터 오수 입장으로 보기 시작한터라 오수 탓은 못 하고 있었다. 내가 경계하는 것 중 하나가 '나쁜 놈은 맞아도 싸'식 논리인데, 그게 딱 그런거잖아. 물론 죄값은 치러야겠지만, 죄값 이상(을 측정할 기준을 잘 모르겠지만..)의 대가를 요구하는 건 잔인하다. 그에겐 처벌 못잖게 치유가 절실할테니..
작가가 주려는 메세지는 두 가지가 아니였을까. 하나는 어린시절에 받은 상처는 평생 가므로 조기치유 내지는 평생치유 되어야 한다-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가여운 사람들이며 둘 다 특별하지 않은 결국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거. 둘 다 아프게 와 닿았는데, 정말 이 얘기들을 하고 싶었던 거라면 조금 달랐으면 싶은 설정이 있다. 극 중 해인은 관찰자이자 조력자, 그리고 나아가 치료자 역할까지 하게 되는데 그러면서 동시에 연애감정을 주고받는 상대가 되는 게 좀 불편하더라. 연애는 물론 이따금(아니 어쩌면 필연적으로) 상대의 상처를 보둠고 치료하는 과정을 동반하기도 하지만 '연애=구원'이 당연해질 순 없는 건데. 해인이 스스로도 '어둠의 터널을 헤쳐가날 수 있는 힘을 가진 자는 바로 자기 자신 뿐'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답을 찾아가야 하는 이도, 답을 가진 이도, 결국은 자기 자신이어야 하는 것이거늘. 그런 연애는 자칫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할 수 있게 되기에 무섭다. 세상엔 해인과 해인의 어머니같은 '구원자적 존재'만 있는게 아니다. 우린 모두 약하고 여린 보통 사람들일뿐. 서로 의지하는 만큼 서로를 보둠을 수 있어야 할테다.
자신의 상처를 방패삼아 저지른 과오와 직면하는 것을 두려워 할 수록 상처는 깊어 질 뿐이다. 끝내 막다른 곳에서 비극을 맞이한 수하와 오수때문에 가슴이 먹먹하다. 나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일까. 오수의 부탁처럼, 열심히, 있는 힘껏 살다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겠지.
어렵다 :: 2008/12/01 00:27
1. 토요일엔 대학로에서 박언니와 영활 보고, 신촌에서 E선배와 H랑 술을 마셨다. 먼저 언니와 본 '앤티크'이야기. 원작을 전혀 몰랐던터라 그냥 주지훈에 대한 약간의 기대를 안고 본건데.. 역시나 주지훈 캐릭터 참 정이 가더라.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직업을 택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성격을 설정하고..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으면서 설득력있게 그려진 게 참 좋았다. 김재욱(극 중 '마성의 게이'. 이름이 잘..;)과 의도하지 않게 상처를 주고 받았으면서 그걸 오버스럽지 않게 차근차근 보듬어 가는 것도 좋고. 주지훈은 이렇게 내면에 상처를 담고 있는 역할을 잘 소화해내는 듯. 본인의 경험에서 우러나는 걸까. '마왕'도 언제 한 번 봐야할텐데.. 그리고 신촌 술자리 얘기. 언제나 우리의 관심사인 '소통'이 화제에 올랐는데, 실컷 이야기하고 나서 내리게 된 결론은 연애도 결혼도 모두 어렵다- 는 거였다. 훌륭한 사람 만나기도 어렵고. 하지만 악당의 수 만큼이나 훌륭한 사람도 많으니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는 것 또한 뻔하지만 다시금 내리게 된 결론.
2.
날카로워진 하나의 마음을 감싸안는 또 다른 마음이, 이제는 제법 여유가 생겨 당황하거나 함께 예민해지지 않고 언제나 그랬듯 따뜻하게 웃으면서. 그 마음이라고 날카로워지고 지칠 때가 없을까. 예쁘다 참.
며칠 전 RSS에서 이채님의 이 글을 보고나서 가슴이 찡해졌다. 세상엔 예쁘게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참 많다.
3. 누군가 자아실현수준이 낮아질수록 대중문화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다고 말해 준 적이 있었다. 뭐에 근거한 얘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머릿속이 복잡해 질 때 껄껄 웃기 위해 오락프로를 찾게 되는 걸 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닌 듯. 오늘은 갑자기 그동안 챙겨보지 않았던 애들 동영상이 다 보고싶어져서 한참이나 실시간 영상들을 뒤적였는데, 다 보고 현실로 돌아오니 어쩐지 서글퍼졌더랬다. 어쩌면 아이팟이니 pmp니 하는 어른들을 위한 장난감 시장이 커지는데엔 이런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4. 또 다른 누군가는 사람에게 있어 일탈행위란 삶의 활력을 위해 꼭 필요한 요소이며, 가장 널리 알려진 '건전한 일탈행위'로는 여행이 있다고 했다. 앞서 대중문화에 대한 얘기는 아는 선배가 한 말이니 그렇다 쳐도 이 말은 심리학 학자가 저서를 통해 발표한 말이니 기정사실로 봐도 무방할 듯. ..인게 아니라 사실이잖아! 이놈의 환율만 제정신;이면 신나게 겨울여행 계획 짜고 있을텐데.. 이 긴 겨울, 여행을 빼고 나면 뭘 하며 지내야 잘 놀았다고 소문낼 수 있을 것이냔 말이다. 쩝. 한 편으론 '아무리 돈이 많이 들어도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쉬어야 마음 편하게 쉴 수 있을텐데' 싶어져서 자꾸만 여행을 합리화 하게 되는데(사실이 그런걸..) 통장잔고보면 자제해야지 싶다. 휴.. 지난 번 여름에 오사카 대신 지르려고 했었던 제주도도 회사 워크샵으로 가고 나면 또 가기 애매해진단 말이지. 정말이지, '잘 쉬기'도 '일 잘하기'만큼이나 어렵고나.
상처입은 자리가 고운 그대라서 :: 2008/11/11 01:19
인간은 모두가 미완성된 여린 존재다. 그래서 더욱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 안아야 할 터인데.. 아직도 내겐 '어른의 불완벽함'을 받아들이는 일이 어렵다. 이건 참 마음 아픈 문제다. 비단 주변의 어른들 뿐 아니라 어른이 된 나 자신까지도 갉아먹게 되니까. 남이 주는 상처를 견디기 어려워하고, 내가 주는 상처를 인정할 수 없어하고..
이따금 입 밖으로 소리내 '괜찮아 그럼 뭐 어때'라고 말하곤 한다. 좋고 나쁘고 바람직하고 바람직하지 않고를 떠나, 그건 그 자체로 온전히 받아들여야 할 문제인것을. 흐트러진 자연스러움을 사랑하지 않는 나는 경직된 부자연스러움을 사랑한단 말인가. 너도, 나도, 우린 모두 여린 존재들. 그 흐트러진 모습까지도, 사랑할래.
이 노랜 최근에 좋아하게 된 신혜성의 '그대라서'. 신혜성이 부르는 모던락스런 노래는 어딘지모르게 어색해서 MP3에 넣어놓고도 부러 잘 듣지 않았는데, 문득 가사 한 구절에 꽂힌 이후부터 주야장천 듣는 중.
사랑해요 그 눈물도 사랑함의 의미를 아는 가슴도
'상처입은 자리가 곱다'는 말이 참 예쁘다. 눈물나게 예뻐서 혼자 출퇴근길에 지하철에서 들으면서 울컥울컥 한다. 이런 사람과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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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형 :: 2008/09/28 02:43
모름지기 이상형이란 늘 바뀌기 마련. 뭐 취향이 바뀌어서 일 수도 있고, 아님 간절해지는 항목(?)이 달라져서 일 수도 있고. 이번에 정해진(나도 모르게 정해'졌'다)이상형은, 결국 여지껏 그려왔던 모든 바람의 총체적 결론인 듯 싶다. 뭐 다시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건강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졌다. '신체 튼튼'도 좋지만 내가 원하는 건 '마음 튼튼'.
상처에 쉽게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너진다 해도 스스로 바른 치유법을 갖고 있거나 혹은 가지려고 노력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좋겠다. 누구에게나 가슴 속에 크든 작든간에 상처가 하나 쯤은 있기 마련이지만(누나 가슴에 삼천원쯤은 있다, 는 모 배우의 명대사가 생각나 주시고 -.-) 그걸 어떤 방법과 어떤 방향으로 치유해 내느냐에 따라 개개인의 인성이 참 많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고 있는 요즈음이다.
결국 중요한 건 '그 상처와 대면할 용기를 가졌느냐 아니냐'려나. 그럼 용기의 근원은 어딜까. 자아존중감일까.
이렇게 써놓고 보니 뭔가 나는 '마음 완전 튼튼'해서 이러는 것으로 오인;받을 수도 있겠지만.. 곰곰 따져보면 결국 이건 요즈음의 내가 지향하는 바, 인 셈이다. 그래서, '이상형'이다.
새록새록 :: 2008/09/07 02:41
오랜만에 홍대 앞에 다녀왔다. 졸업 전까지 항상 붙어다녔던 동기녀석과 두 학번 위 선배를 만나 일식집에서 밥 먹고 바에서 수다수다. 동기녀석의 강추로 간 바는 무지무지 맘에 쏙 들어서 그대로 떼어다가 청담역 앞에 갖다 붙여놓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켰다. 분위기도 좋고, 인테리어도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신발 벗고 올라갈 수 있는 룸.. 도 아닌 것이, 마루;;도 아닌 것이가 무려 5층 창가에 좍 있었다! 꺄아!). 결정적으로 가격까지 착했다. 언젠가 회사사람들과 마셨던 그 달달한 스파클링 와인이, 무려 강남의 절반가에 팔리고 있더라 ^_T. 그거랑 딴거랑 해서 두 병을 비우고 모듬치즈까지 먹었는데 계산서에 5만원대가 찍혀 있었다능.. 곁에 있을 땐 소중함을 몰랐던 나의 홍대여.. T_T 왜 직장인들이 주말이면 꾸역꾸역 홍대앞에 모여드는지 그제사 알 것 같았다(오늘도 저녁 6시경 지하철타고 가는데 역에서 부터 지상 출구로 나가는 길에 무려 '줄'이 세워져 있더라;; 빠져가나는 데만 5분이 걸렸다. 만남의 광장인 KFC 앞엔 여전히 사람들로 드글드글..). 엉엉. 가깝기만 하면 자주 갈텐데. 오늘도 분명 바에서 10시에 나온 것 같은데 버스타고 집에 와 보니 12시..;; 그러고보니 낮에 언니한테 전화가 왔길래 '나 오늘 홍대 간다~'라고 자랑질 했더니 '난 어제 갔다왔지롱~'이라는 답이 돌아왔었다능. 언제가 될지 모르겠는 박자매 독립의 그 날엔, 홍대와 강남 사이 어디께에 집을 구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흣.
..아 놔 어쩌다가 글이 홍대예찬;;으로 흘러간건지 잘 모르겠지만, 원래 쓰려던 글은 '오랜만에 정든 이들과 만나서 노니 좋더라'였다. 사실 집에서 너무 멀어 사회생활 시작하면서부터 딱히 갈 일이 없어진 홍대로 약속장소를 일방통보 받은 것에 살짝 맘이 상해있었는데, 이 사람들이 신촌과 신정네거리에 살면서 2~30분씩 지각까지 해버린거다. 그래서 서운한 마음을 그득안고 시작된 만남이였거늘, 정신없이 놀고 수다 떨다보니 거짓말처럼 그런 온갖 서운한 감정들이 싹 사라지는거라. 역시 이래서 당신들이 '내 사람'이구나 싶더라. 6년동안 서로간에 켜켜이 쌓아온 믿음과 애정의 힘이란게, 그런 거였다. 막판엔 바에 앉아 이네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있으려니 맘이 꼭 밥 안 먹고도 배부른 것처럼 편안해져서는 히히- 소리내 웃다왔다. 방금 전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다른 선배한테도 보고싶다는 문자가 왔더라. 보면서 조금 울컥,했다.
희미해져가는 소속감과 유대감이 다시 새록새록해진 토요일이였다. 사람들, 그리고 홍대 앞과 말이다 :)
어쩐지 :: 2008/09/02 02:31
잡담이 하고 싶은 밤.
1. 일요일에 20세기소년 쇼케이스를 보고 난 후 맹과 빕스에서 쳐묵쳐묵 한 뒤(요즘 맹이랑 즐겨쓰는 어휘들. 쳐묵쳐묵, 쳐발쳐발, 병맛, 비만행특급열차 등등. 텍스트 상으론 꽤나 격해보이지만, 소리내 발음하면 조금 귀엽게 들린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다;;) 대학로에 있는 사주카페에 갔더랬다. 점쟁이님(이라고 해야하나)은 나더러 올해까지 남자가 없으며 내년에 생길 수 있으나 딱히 맘에 쏙 드는 사람은 아닐거라 했다. 더불어 올해 안엔 별 다른 일이 생기지 않을테니 돈이나 알뜰하게 벌어모아놓으라고.. -.- 울 회사에선 징하게 눌러 앉아 있을 것이며 짐 하고 있는 일이 100% 적성이진 않아도 꽤 잘 맞을거란다. 뭐, 사전정보 탐색 후 하시는 말씀이니 그럭저럭 들어맞지 않을 리 있나요. 하지만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킁. 닥치고 저축.
1-1. 점심 때 이 얘길 들은 몇 분 왈, "중간중간에 복채를 쥐어드렸음 만사형통 운세로 말씀해주셨을텐데.."
2. 블로그 다니면서 느끼는 건데, 보고 듣고 접하는 것이 비슷한 무리들끼리는 구사하는 어휘나 풍기는 분위기가 서로 닮아있다. 오늘은 어찌어찌하다 예술 하시는 분들의 블로그를 쭈욱 탐방하게 됐는데, 이 분들의 말투는 어쩐지 모두 수필분위기. 어쩌면 나도 어떤 이들에겐 '어떤 무리의 전형'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 PR인의 전형, 이랑은 일억광년 정도의 거리가 있겠지만. 쿡. 뭐 적당히 '발랄한 20대 아가씨의 전형'이라고 해 둡시다.
2-1. 모두와 친해질 순 있어도 결국 긴밀해 지는 건 비슷한 환경에서 나고 자라 공부하고 논 사람과더라. '공감'에서 오는 소통의 수월함,이 그 까닭일테다. 감정이라는 것은 결국 철학과 사상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것이니. 뒤집어 말하자면, 그래서 내가 이해할 수 없어도 상대에겐 진리인 것이 존재할 수 있는 게고, 상대가 이해하지 못한다 해서 나의 사유가 정당하다는 사실을 굳이 의심할 이유가 없는 것이겠지. '이해'와 '공감'의 성격은 꽤나 다르다. 조금 슬프지만 또 조금 기쁜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