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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전 고민 :: 2009/07/28 02:00
올 여름 휴가지로 낙점 된 곳은 베트남이다(정확히는 베트남-마카오-홍콩이지만 첫 행선지이자 가장 오래 머물 곳, 그리고 유일하게 처음 가 보는 곳이니 심정적으론 베트남에 가는 것으로만 생각하게 되는 무어 그런 상황). 사실 동행자 S님이 처음 베트남에 가자고 제의 했을 때 선뜻 내키지 않아 주저주저했더랬다. 그런 나의 뜨뜻미지근한 반응에 '왜요, 싫으세요?'라는 질문이 돌아오자 한참만에 찾은 답변은 '용기가 나지 않아서요'였다. 그리곤 '무엇에 맞설 용기가 나지 않는가'에 대한 이런저런 이유들을 주워섬기며, 고민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베트남은 사회주의국가다. 무려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그리하여 그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남다른 사람들이 사는 나라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여행자들을 '등쳐먹지' 않고는 하루하루 끼니를 이어갈 수 없는 사람들로 가득한 나라이기도 하다. 미터기를 조작시켜놓은 '가짜 택시'가 도심을 질주하고, 가방을 도둑맞아 경찰서에 가보면 소매치기와 짠 경찰이 웃으며 '여권만은 돌려주마'하는 여유마저 부리고, 멀리 우리가 떠날 휴양지 무이네의 모래사막 언덕엔 썰매를 태워준다며 포대자루를 들고 졸졸 쫒아오는 어린이들로 가득하다고. 어디 사람만 병들었으랴. 그 유명한 베트남 쌀국수에는 MSG 가득한 조미료가 무려 포대째로 들어간단다. 그 '자랑스런 인민들'이 '자본의 첨병'으로 내몰린 광경, 나는 그걸 마주하는 게 두렵다. '털리는 것' 그 자체도 썩 유쾌하지 않겠지만 소매치기를 당해도 화낼 수 없고 아이들이 졸졸 따라오면 고통스러워하며 그 자리를 뜨기위해 안간힘 써야 할(뭔가를 안 주면 화를 내며 해코지 한단다. 그렇다고 해서 선뜻 주면 그 동네 모든 아이들이 다 따라오게 된다고..) 그 날들이 겁나서 어찌해야할 바를 모르겠다. 그네들에게 해 줄 수 있는게 뭔지도 모르겠고 해 준단들 커다란 변화가 올 것 같지도 않은 현실과 맞서는게 무섭고 싫어서 그저 피하고 싶었던 거다. (그래서 여지껏 여행을 전부 홍콩, 일본 등 별로 불편하지 않은 곳들로만 계속 다녔더랬다)
가기로 결심한 후 하게 된 건 '그나마 내가 나의 처지에 맞게' 해 줄 수 있는 게 뭘지 조금이라도 고민하고 가면 덜 괴로워지지 않을까 싶어 세계화와 빈곤, 슬럼에 대해 찾아보는 것이였다. 다음카페 <'One World Travel Maker 5불 생활자'>에서 읽은 남미 슬럼가에 대한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였다. 한 식구가 있으면 가족구성원 중 남자는 살인자, 여자는 몸을 파는 사람이 된다는 남미 슬럼가에선 식비가 없어 바나나에 버터를 발라먹고 살고 있는 마당에 현금많고 돈 될 물건 투성이인 여행자 털어 가는 쯤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며 자동차를 타고가다 스톱이라도 하는 순간 바로 유리창이 깨지며 피습당할 각오를 해야하니 모험으로라도 절대 가지말라는 이야기는 태양신과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 프리다칼로로 각인되어있는 남미에 대한 환상을 여지없이 부수어주었다. 예전에 사놓고 인제사 읽기 시작한 <세계화를 둘러싼 불편한 진실>은 머릿말에서부터 숨이 턱턱 막혀 도통 진도를 뺄 수가 없다. 최저개발국과 선진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 비율은 1970년 1:19에서 지금은 거의 1:100으로 악화되었단다. '싫으면 너도 부자되든지'는, 이 모든 재앙을 개인의 게으름과 능력부족의 탓으로 몰고가는 최악의 논리다. 갑갑하다.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건 대체 뭐지.
그러다 최근, 하재근 씨가 쓴 이 글을 보고 둔기로 머리를 맞은 것 처럼 멍하니 할 말을 잃었더랬다. 충분히 비난(not 비판)받기 쉬울 법한 요소들이 곳곳에 있는 글이지만 그런 점을 다 차치하더라도 이런 관점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싶은 것이 내게는 자그마하나마 실마리가 되어줬다. 내가 지금 무엇보다 가장 우선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건 그네들의 사기에 모르는 척 자연스레 넘어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보다, 아이들에게 안겨줄 1달러짜리 지폐들을 준비하는 것 보다, 결국 내 주변의 부의 분배와 연관된 현안들에 어떻게하면 보다 섬세하게 귀 기울일 수 있을 것인가- 겠지. 그게 바로 지구 저 편의 아이들에게 '그나마 내가 나의 처지에 맞게' 해 줄 수 있는 것일테다.
아. 아무래도 당비를 올려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