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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확신과 자존감 :: 2008/12/18 02:23

어른이 되자! 내가 누군지 알고 살자!
[매거진 esc] 김어준의 그까이꺼 인터뷰



...(전략)

정혜신 : 당연한 거 아닐까? 나는 인간의 정신은 진화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물질적으로는 이전 세대가 이뤄놓은 게 후세의 생활에 편입되고 또 다음 단계에 올라가는 식으로 축적, 진화되지만 정신은 아니다. 부모의 학식이 자식에게 편입되는 게 아닌 것처럼. 모든 인간이 자기가 직접 체험해 보기 전에는 이해도 안 되고 설득도 안 된다. 그런데 요즘 주변을 보면 직접 몸으로 부딪치거나 자신을 시험할 수 있는 과정이 철저히 봉쇄된다. 겪은 만큼 성장하고 시행착오나 실수도 해보면서 이걸 해석하고 자기 확신으로 연결되는 순환고리가 있어야 하는데 곳곳이 막혀 있다. 사회적, 문화적, 가정적으로 모두 말이다.

김어준 : 결국 공교육의 문제와 연결된다. 우리 교육은 상위 1프로를 뺀 나머지를 낙오자로 만드는 시스템이다. 패배의식을 체계적으로 내면화한다. 명품 유행도 그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낙오자가 된 99프로가 비싼 가방 메고 잠시라도 일류라는 착각과 위로를 받는 거지. 그래서 명품은 우리나라에서 과소비가 아니라 정신적 위로다.

정 : 불안이 없으려면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하는데 자기를 느껴 볼 수 있어야 자기 확신도 생긴다. 연애 등의 인간관계나 여행, 예술적 체험 같은 게 다 온몸의 세포가 살아나는 경험인데 우리는 이런 것들을 맨 뒤로 밀어놓는다. 인간관계만 해도 살아가는 데 그보다 중요한 재산이 없는데 학원 가고 칠판 보느라 관계맺기의 훈련도 당연히 밀린다. 흔히 성공한 사람이라고 해도 내면적으로는 불행한 경우가 많은데, 대다수는 관계가 안 되기 때문이다. 이건 제대로 관계 맺을 수 있는 각성된 개인, 즉 ‘어른’이 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결혼의 갈등도 같은 거다.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어른’이 아니면 사랑을 유지해나갈 수가 없다.

김 : 멋진 말이다. 이거 내 말로 써 달라.(웃음)

정 : 그래서 심리 상담을 다르게 표현해 보자면, 내게 물어봐야 할 나에 관한 중요한 질문을 엉뚱한 사람에게 하고 있다는 걸 자각하도록 돕는 과정인 거다. 스스로 생각해서 어떤 깨달음을 얻는 순간에는 스몰 쇼크를 느낀다. 심리 관련 책을 읽으며 자기를 대입시켜 보면서 경험하는 지적인 깨달음과는 다른 유의 충격이다. 감성적 깨달음은 언제나 충격을 동반한다. 기업가들 상담을 할 때 ‘그때 당신은 뭘 느꼈나’ 물어보면 갑자기 사람이 멍해진다. 그러고는 느낌이 아닌 생각을 말한다. 그럼 재차, 생각 말고 당신의 느낌을 말해 달라고 하면 다시 블랙아웃이 된다. 그렇게 정지된 순간을 직접 느끼게 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거다. 내가 이런 존재구나, 내가 느낌 하나 없이 살아왔구나 하는.


자신감과 자존감의 차이

김 : 그 말은 내 식대로 말하면, 사람들이 자기가 누군지 모른다는 거다. 영화 <데어 데블>을 보면 주인공이 장님인데 소리가 공간에서 부딪혀 돌아오는 걸 감지해 그 윤곽으로 상황을 파악한다. 그처럼 자기가 했던 행동이나 결정 등이 반향을 일으켜서 내게 되돌아와 만드는 윤곽선이 바로 자신이다. 그중에는 맘에 안 드는 것도 있지만 그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다. 그걸 받아들이면서 자신에 대한 관심이나 잘 보이려고 과도하게 하는 노력이 사라지며 만들어지는 게 자존감이고.

정 : 관심이 없어진다기보다 자기에 대한 타인의 시선에 매달리지 않게 되는 거지.

김 : 같은 말이다.(웃음)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존감과 자신감을 헷갈린다. 20대의 나를 생각하면 자신감은 있었다. 내 능력에 대한 신뢰. 하지만 그걸 남한테 입증해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30대를 넘어가면서 나를 입증해 보이겠다는 강박이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정 : 어떤 계기가 있었나?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도 마음의 변화 같은?

김 : 특별한 사건은 없었다.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어느 날 문득 보니 내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남의 승인 필요 없이 그저 내가 생겨먹은 대로 즐겁게 살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20대엔 내가 이 정도입니다, 봐 주세요 하고 살았는데, 어느 날 그런 생각 자체를 깡그리 잊고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며 그로부터 즐거움을 누리는 데 집중하고 있더라.

정 : 그런 확신을 스스로 했기 때문에 외부에 연연하지 않는 거다. 돈이냐 사랑이냐의 문제도 고명한 선생님한테 물어봐서 답을 얻는 게 아니라 총수처럼 ‘제대로, 또박또박’ 살다 보면 자명해지는 거다. 절대적으로 내가 나를 느껴서 얻는 게 자존감이라면, 자신감은 외적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

김 : 자신감은 사실 동전의 양면처럼 패배의식을 동반한다. 외부에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조건이 제시되면 무너질 수밖에 없으니까. 예를 들어 공부 잘해 남에게 인정받아 만들어진 자신감은 나보다 공부 잘하는 놈 앞에서 무너지게 되어 있다. 하지만 스스로 구축한 자존감은 남의 승인이 필요 없다. 물론 남이 날 좋게 봐 줬으면 하는 거야 누구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니어도 자존감이 튼튼하면 나는 그대로다.

정 : 그렇게 자존감이 내재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뭔가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땐 내부 시그널도 금방 온다. 스스로를 견제하는 자아가 빠르게 작동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남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된다. 그러다 보면 불행하게 살 가능성도 낮아진다. 외적 상황이 자신을 몰아가도 스스로 그렇게 안 살도록 결정하게 되니까. 많은 부부들이 관계가 안 좋아도 애가 결혼할 때까지만 참고 산다고 하는데, 그런 환경에서 자란 애가 행복하게 살 가능성은 무척 낮다. 부모의 행복하지 않은 삶을 공기처럼 마주하며 자란 아이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행복을 삶의 예외적인 상황으로 간주하게 된다. 그래서 자기가 불행해져도 문제의식이 별로 없다. 불행을 쉽게 수용한다. 행복을 느끼고 사는 부모와 산 아이는 자기 삶이 그런 조건에서 벗어나면 자기 안의 경계경보가 빠르게 작동한다. ‘내 삶이 왜 이래? 이건 아니잖아’ 한다.

(후략)...

기사등록 : 2008-12-17 오후 06:07:49
ⓒ 한겨레 (http://www.hani.co.kr)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와 정신과전문의 정혜신 씨의 대담 중 일부. 온 몸의 세포가 곤두서는 느낌이다.

슬픈, 마왕 :: 2008/12/14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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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훈의 작품 고르는 안목을 믿고 마왕을 선택, 지난 주말부터 이번 주말까지해서 드뎌 다 봤다. 지난 주에 15화까지 봤을 땐 한 회 한 회 넘어갈 때 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에 땀이나서 죽을 것 같았는데 일주일 쉬었다 보니까 좀 볼 만 해 지더라. 숨 고르면서 자알 봤다.

추리극 같으면서도 결국은 심리극인게 좋았다. 앤티크랑 비슷한 점이기도 한 것이. 초반에서부터 이미 범인은 짐작이 가고 결론도 알 만 한데 그냥 주인공이 갈등하면서 심적변화를 겪는 과정 하나하나가 절절하게 와 닿아서 끝까지 몰입하게 되더라. 예전에 한 선배가 쓴 감상 뒤적여보니까 오수가 죄를 지어놓고도 '왜 난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거야'모드인 걸 보고 이해가 안 간다느니 남 탓만 하는 찌질이라느니 하는 타 시청자; 감상도 많았다던데. 나 역시 선배처럼 처음부터 오수 입장으로 보기 시작한터라 오수 탓은 못 하고 있었다. 내가 경계하는 것 중 하나가 '나쁜 놈은 맞아도 싸'식 논리인데, 그게 딱 그런거잖아. 물론 죄값은 치러야겠지만, 죄값 이상(을 측정할 기준을 잘 모르겠지만..)의 대가를 요구하는 건 잔인하다. 그에겐 처벌 못잖게 치유가 절실할테니..

작가가 주려는 메세지는 두 가지가 아니였을까. 하나는 어린시절에 받은 상처는 평생 가므로 조기치유 내지는 평생치유 되어야 한다-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가여운 사람들이며 둘 다 특별하지 않은 결국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거. 둘 다 아프게 와 닿았는데, 정말 이 얘기들을 하고 싶었던 거라면 조금 달랐으면 싶은 설정이 있다. 극 중 해인은 관찰자이자 조력자, 그리고 나아가 치료자 역할까지 하게 되는데 그러면서 동시에 연애감정을 주고받는 상대가 되는 게 좀 불편하더라. 연애는 물론 이따금(아니 어쩌면 필연적으로) 상대의 상처를 보둠고 치료하는 과정을 동반하기도 하지만 '연애=구원'이 당연해질 순 없는 건데. 해인이 스스로도 '어둠의 터널을 헤쳐가날 수 있는 힘을 가진 자는 바로 자기 자신 뿐'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답을 찾아가야 하는 이도, 답을 가진 이도, 결국은 자기 자신이어야 하는 것이거늘. 그런 연애는 자칫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할 수 있게 되기에 무섭다. 세상엔 해인과 해인의 어머니같은 '구원자적 존재'만 있는게 아니다. 우린 모두 약하고 여린 보통 사람들일뿐. 서로 의지하는 만큼 서로를 보둠을 수 있어야 할테다.

자신의 상처를 방패삼아 저지른 과오와 직면하는 것을 두려워 할 수록 상처는 깊어 질 뿐이다. 끝내 막다른 곳에서 비극을 맞이한 수하와 오수때문에 가슴이 먹먹하다. 나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일까. 오수의 부탁처럼, 열심히, 있는 힘껏 살다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겠지.

스물네살도 심리학에게 묻다 :: 2008/08/09 23:22

양수팀장님 책장에서 우연히 김혜남 씨의 책을 발견하곤 빌려왔다. 제목은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어쩐지 몇 주전에 읽었던 칙릿들의 주인공들(을 비롯하야 읽으면서 울컥한 독자;들)에게 광명을 밝혀줄 듯한 내용들로 꽉 차 있었다. <달콤한 나의 도시>의 내용은 아예 본문 중에 인용되어 있기도 했으니. 그 중에서도 챕터 3의 내용은 제목만으로도 날 울렸;는데 제목들이 대략 이러하였다.

3.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일과 인간관계

- 서른살이 직장에서 괴로운 까닭
- 나는 왜 만족을 모르는가
- 인생을 숙제처럼 사는 사람들
- 나는 왜 남에게 일을 맡기면 불안해 하는가
- 나는 지금 쓸데없이 시간만 허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나는 왜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는가
- 일과 삶의 균형을 찾는 방법 네가지
- 그만두기 전에 생각해 봐야 할 것들
- 직장에서 가족관계를 바라지 마라

......T_T T_T T_T T_T T_T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마음 속 상처입은 아이'는 어떻게 해야 나을 수 있는 걸까. 애당초 다 낫기란 불가능 한 걸까. 완치를 기다리다 아마 쉰이고 예순이고를 훌쩍 넘길 것 같다. 나름 대학때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사회에 나와서 다시 예전의 고민과 버릇을 되풀이하는 날 보며 좀 무섭고 슬퍼지고 있는 참이다. 스스로의 노력밖에 답이 없겠지만, 어렵다. 많이.

김혜남 씨가 일과 삶의 균형을 찾는 방법 중 첫째로 꼽은 것이 바로 '휴가계획을 세워라'였기때문.. 이라기 보다는(전적으로는 아니지만 일정부분 지지문 역할을 했음은 부정 못 하겠다;), 다들 여름 휴가계획을 제출한 와중에 아직 안 낸 1인인지라 나도 좀 쉬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던 차 모 여행사에서 특가로 내놓은 항공권 입찰에 덜컥 응해버렸다. 이 항공권은 광복절에 주말을 더한 2박 3일용으로 낙찰 확률이 2분의 1이라니 모 아니면 도인건데. 휴가는 가을께 넉넉히 쓰고, 8월엔 휴가없이 적당히 혼자 휴식용으로 놀러갔다 오면 딱이겠다. 안 되면 신문사 후배들이 오라는 엠티 따라가야지.

내일은 박태환의 400m 결승전이 있는 날. 일을 위해 즐겁게 감상해주셔야겠다. 꼭 메달권에 진입해, PR계획에 흐트러짐이 없도록 하나님 하느님 부처님 알라신 산신령 등등 각종 신님들하; 도와주시옵소서.


책 내용 중 일부

다시, 사춘기 :: 2008/08/03 17:14

1. 아무래도 생의 주기를 한 바퀴 비잉 돌아 다시 사춘기를 맞은 것임에 틀림없다. 중고등학교때 즐겨들었던 스타일의 노래들이 좋아져선 비오는 날이면 부러 지하철대신 버스에 올라 이어폰을 꽂고 차창밖을 보며 한껏 센티함에 젖어든다. 말과 글로는 끊임없이 자의식과잉의 산물들을 쏟아냈다 또 급히 주워담는 바보짓을 반복하고 있고. 주변사람들에게 떼쓰고 칭얼칭얼거리다가 이내 급부끄러워져 자학하기도 일쑤다. 대학 때 고쳤다고 생각했던 습관들도 불쑥불쑥 튀어나와 이따금 날 당혹스럽게 한다. 이유가 뭘까.

2. 웹서핑을 하다 우연히 대학 때 알고 지냈던 한 선배의 블로그에 들어가게 됐다. 그 블로그에서 링크에 링크를 타다보니 옛날 사람들 무리가 우르르 찾아지더라. 한참이나 그 사람들 블로그를 기웃대다 브라우저를 껐다. 생각하면 안타깝고 짠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부럽고 존경스러운 그때 그 사람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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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도 한 번 올렸던 만환데 볼 때 마다 가슴에 콕콕 박혀서.

루나님의 고민과 싱크로율 100. 난 아주 가끔 흔들려서 자신을 놓아버리기도 하는데, 이 때 내게 실망하거나(박별리에게도 이런 면이 있다니!) 나에 대해 편견(박별리 알고보니 별 것 아니군 등등)을 갖는 사람들이 더러 생긴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아무것도 못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아버리기를 시도했다면, 정신이 들고나서 한참이나 자학하며 괴로워한다. 끙.

4. 내 클라이언트 중에 한 분은 나와 나이차이가 크게 나지 않으며 사회경험도 많지 않아 업무 파트너를 다루는 실력도 나와 고만고만한, 순한 아가씨다. 얼마 전엔 그 아가씨와 통활 하는데, 용건을 나눈 뒤 마무리 타임이 다가오자 약속이나 한듯 '감사합니다'라고 동시에 외쳐버린거다. 순간 둘 다 움찔한 다음 바로 다음 마무리를 위해 인삿말을 덧붙였는데 '수고하세요'라고, 또 1초도 어긋남없이 동시에 외쳐버린것 아닌가. 으하하. 파트너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우리가 나열할 수 있는 어휘는 전부 거기서 거기였던거다. 순간 묘한 동질감과 함께 우리 둘의 관계가 느무 재밌게 여겨져 수화기를 내려놓으면서 '으하하'하고 엄청 크게 소리내어 웃어버렸다. 나의 폭소가 그 아가씨의 귀에도 들어갔을라나. 귀여운 클라이언트님 같으니라고.

Lunapark :: 2008/01/01 23:12

지난번에 이어 또 다시 취향포스팅. 이러다가 앞으로 몰두 씨리즈를 쓰게 되는건 아닐지 조심스레 전망해보고;

오늘은 한RSS를 돌아다니다 Luna님의 Lunapark에 들어가게 됐다. 사실 Luna님의 그림은 워낙 유명해서 특히 일기 같은 건 여기저기서 가끔 몇 컷씩 보곤 했는데(매거진T에서 연재중이시기도 하고!) 실제 이 분 홈페이지에 들어가 정식으로 작품들을 보게된 건 또 처음. 일기들을 죽 보다 느낀건데, 이분 아무래도 심리학 공부를 하셨거나 그런 쪽에 관심이 많으신게 아닐까 싶었다. 사유하고 토해내는 감정들에서,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고자 쓰는 어휘나 예시들에서 관련 지식들을 많이 습득하고 그것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셨겠구나 싶은 흔적들이 역력했다. 그러고보니 예전에 민현님이 추천해주신 만화가 있었는데.. 이분거였던가? 이제와서 남겨주신 댓글을 되짚어보려니 잘 되지 않아 확인하진 못했다. 쩝. 어쨌거나 어쩜 이다지도 '철학적인' 생각들을 현실적으로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표현해 내실 수 있는건지. 정신 못 차리고 한참동안이나 일기장을 클릭해대며 쌓여있던 일기들을 죄 읽어버리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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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더 보기


꼭 이런 내용만 그리시는 건 아니고 오히려 소소한 생활얘기가 많은데 어느 것 하나 놓칠 것 없이 재밌다. 그리고 홈페이지 둘러보다 알게 된건데, 이분 휴가때 무려 몽골엘 다녀오시기도 했어! 몽골에 다녀왔던 사람으로서 급 동질감마저 느끼게 됐다는 -_-;; ...해서, 이곳도 RSS추가완료.

자기 삶을 어떻게 이끌어 나갈 것인가 :: 2007/12/07 11:21

...(전략) 많은 사람들이 구속적인 자기 파괴적 행동에 갇혀 있으면서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스스로 묶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든 문제가 "외부"에 있다고 믿는다. 다시 말해서 그들의 문제는 그들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에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문제의 해결책 또한 "외부" - 적당한 남편 감, 완벽한 여성, 자기의 진가를 인정해주는 상사, 보다 흥미 있는 직업, 올바른 식생활 등 - 에 있다고 확신한다.

자기의 삶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것, 장래에 대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 등은 치명적인 자기 태만이다. 결정을 미루거나 적절한 조치를 회피하는 우유부단한 습관은 삶에서 맛볼 수 있는 영속적인 만족감과 행복을 앗아가기도 한다. 인간의 정신은 자기 정당화나 "진짜" 이유를 감추기 위한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내는 데 관한 한은 고갈을 모르는 저수지이다. "아직은 시기상조야," "아직은 준비가 안 됐어," "좀 더 알아봐야겠어," "그런 대단한 일을 하기에는 경험이 부족해," "난 너무 어려," "난 나이가 너무 많아," 등 합리화는 끝이 없다.

(중략) 물론 직업 선택은 진지하고도 심각한 문제로, 통찰력과 자기 인식을 가지고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해롤드의 문제는 무엇이든 질질 끌며 지연시키는 사람들, 목전에 있는 어려운 결정을 회피하려고 관심을 다른 활동에 쏟아 부으면서 삶을 스스로 방해하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예이다. 직업 적성검사를 아무리 여러번 해도, 피검자에게 희열과 충족감을 가져다 줄 일이나 활동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직업 적성 검사는 기껏하야 피검사자의 적성을 보여줄 뿐이고 이런 정도라면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다. 이런 저런 강좌에 등록해서 개인의 관심도나 즐거움, 또는 능력을 실험하는 것도 그것이 어떤 일을 지연하기보다는 그 일에 전념하게 해준다면 합당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창조적이도 만족스런 삶에 요구되는 것은 각 개인이 잘 할 수 있는 일, 또는 기쁨을 줄 수 있는 어떤 일을 찾아 거기에 전념하는 것이다. 운이 좋은 사람은 자기가 전념하는 일에서 두 가지를 다 얻는다.

직업선택의 문제로 치료받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음 세 범주중 하나에 속한다. 첫 번째 유형은 인생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많은 생각을 하고 환상에도 빠지고, 심지어 취사 선택에 대한 심각한 연구도 해보지만, 마음에 드는게 없고, 모든게 막연하고 일반적인 관심만을 유발할 뿐이다. 두 번째 유형은 일도 잘하고 (자신들의 기준으로) 성공적이라고 여겨지지만, 일에서 즐거움이나 만족감을 맛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어쩌면 능력에 미치지 않는 직업을 가지고 있거나 일의 특성이 그들의 관심이나 도전의식을 유발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세 번째 유형은 추구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고 여러가지 이유로 그 일에서 성공과 행복을 쟁취할 수 있으리라 확신하지만, 행동을 취해야 할 동기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후략)


제임스 F 매스터슨, 참자기, 한국심리치료연구소
p. 22~25 본문 中

의존 :: 2007/09/12 01:01

...(전략) 콤플렉스와 콤플렉스는 금방 서로를 알아보기 때문에 내 의존성이 자주성의 가면을 쓰고 있을 때 내게는 직접적으로 의존성을 표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처음 만났는데 유난히 친근한 태도로 접근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우정의 이름으로 의존성을 표출하고자 하는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은 자주 전화를 해서 자신이 어떻게 고통스러운지를 두세 시간씩 토로했다. 어떤 이는 외로울 때나 휴식이 필요할 때마다 찾아왔고, 어떤 이는 아침 아홉시에 전화를 걸어 자신의 볼일을 대신 보아달라고 했다. 또 어떤 이는 그냥 자기 옆에 있어주기만 해도 마음이 안정될 거라면서 집으로 와달라고 했다.

예전의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그런 일을 했다. 그것이 인간적 도리이고 이타주의이며 휴머니즘이라고 생각하면서 하던 일을 멈추고 달려나갔다. 그런 식으로 자신의 존재가 쓸모 있고 인정받는다고 착각하기도 했고, 스스로 관대한 사람이라는 오인 속에서 그 일을 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 모든 행동이 내면의 고통이나 삶의 어려움과 맞서지 못한 채 관심을 외부로 돌리려는 방어적 태도였으며, 무엇보다도 억압된 의존성의 표출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의존성을 깨닫고 나자 타인들의 의존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그토록 아무 근거 없이, 부당할 정도로 심하게 의존적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충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유도 짐작할 것 같았다. 우리가 태어나 처음 배우는 생존법이 의존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혼자 걷는 데도, 말하는 대도, 심지어 혼자 밥을 먹는 데도 그토록 긴 시간이 걸린다. 심리적으로 독립하고, 사회적 경제적으로 혼자 서는 데는 이십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그 기간 동안 우리가 사용하는 생존법이 의존이며, 의존할 대상을 재빨리 알아보는 능력일 것이다.

예전부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그들의 일을 대신해줄 때 내면에서 올라오던 목소리가 있었다. "너나 잘 살아라." 비로소 그 목소리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것 같았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을 때 나는 이타적 행위, 타인을 보살피는 행동을 모두 중단했다. 의지를 발동시켜 중단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 방식은 서로 병적으로 의존하는 상태여서 두 사람 모두에게 위험한 관계였다. 그런 관계에 고착되면 내면의 좋은 성향을 발현시킬 수 없고, 성장을 향해 노력할 수 없고, 내 삶을 추진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대신 한동안 내 몸과 마음의 건강, 내 욕망, 내 삶에 필요한 것을 보살피고 돌보는 시간을 가졌다. 심리적인 문제들을 하나씩 직면하고 넘어서기 위해 노력했고, 내 삶을 조금씩이나마 앞으로 걸어가도록 했다. 타인의 입장보다 내 입장을 먼저 생각했고, 부당한 의존성이 느껴지는 부탁, 심리적으로 저항감이 드는 청을 거절했다. 달라진 내 태도에 대해 나와 상호 의존적으로 관계를 매었던 친구들이 분노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것은 그들의 자기애적 분노일 뿐이어서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게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한 밤에 전화해서 서너 시간씩 고통을 호소하고 어떤 문제에 대해 상담해주기를 바라는 후배가 있었다. 그와 전화 통화를 서너번 반복한 다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서운하겠지만 잘 들어. 지금 네가 원하는 것은 나의 조언이 아니라 엄마의 사랑이야. 그것도 유년기의 아기가 환상 속에 창조해둔 이상화되고 미화된 엄마의 보살핌이야. 그러니 아무리 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해도 네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는 없어. 이런 일이 계속된 후에 네가 도달하는 곳은 문제가 해결되는 곳이 아니라 나에 대해 화가 나는 지점일 거야. 네 안에 억압되어 잇는 엄마에 대한 분노를 내게 투사하게 될 거야. 네 속에서 엄마를 부르며 투정하는 아기는 다른 누구도 보살펴줄 수 없어. 성인이 된 네가 스스로 보살펴야 해."

다행히 그 후배는 현명해서 내가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했고,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알아차린 것 같았다. 그 후 한동안 소식이 없더니 일 년쯤 후, 한층 밝고 건강해진 목소리로 모든 것이 잘 해결되었고 잘 지내고 있다는 안부를 전해왔다.

라캉은 정신분석의 끝에서 피면담자가 느끼는 감정에 '고립무원의 느낌'이 있다고 한다. "아무한테도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는 느낌이라고 한다. 그것이 바로 의존성이 극복되는 지점, 우리가 진정으로 독립할 때 맞는 감정이 아닐까 싶다.

황인숙 시인의 시집 『자명한 산책』에 실린 첫 번째 시는 <강>이다.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시의 전문이다. 이 시를 읽으면서 혼자 슬그머니 웃었던 일이 있다. 황인숙 시인은 표면적으로는 초연하고 관대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래서 꽤나 많은 의존적인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외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등을 하소연하는 대상이 되었던 모양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한 영화잡지 편집자로 일하는 또 다른 친구가 이 시에 크게 공감한 듯 시 전문을 '편집자의 말'에 인용해 둔 것을 보았다. 그 친구도 그릇이 크고 세상의 갈등이나 통념들을 훌쩍 넘어선 사람처럼 보인다. 의존성에 대해 생각하면 이 시가 떠오르고, 덩달아 그 두 사람이 떠오르고, 그들의 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김형경, 사람 풍경, 아침바다
p 94~97 본문 中

천개의 공감 :: 2007/09/05 05:12

본래 시간표는 수업과 수업 사이 공강시간이 점심시간 한시간 밖에 없도록 구성해 놓았다만 아직 개강 첫주라 두시간 세시간짜리 수업도 짧으면 15분에서 길면 한시간 만에 끝나고마니 졸지에 이 남는 시간을 어디서 어떻게 보내야할지 고민해야 하는 처지가 돼버렸다. 뭐 그래봤자 내일까지만의 처지지만; 그래서 오늘은 간만에 도서관으로. 예전에 국문과 전공 수업 기말논문 쓰느라 갔었던 이후 실로 백만년만의 방문이었다. -_-.. 검색대 앞에 서서 읽고 싶은 책 제목을 생각나는대로 쳐넣고 그 중 몇 개를 골라 대출했다.

김형경씨의 <천개의 공감>은 첨 나왔을 때 부터 읽어야겠다고 노래노래하던건데 인제사 보게됐다. 두시간 동안 한자리에 앉아서 읽고 나중에 집에 오는 길 지하철 안에서도 꼬박 읽었는데도 아직 3분의 2정도밖에 읽지 못했다. 이 '에세이의 탈을 쓴 심리학서'는 마치 눈이라도 달린 것 처럼 이 책을 읽으며 요동치고 있는 내 심리 하나하나를 낱낱이 까발려줬다. 무심한 듯 시크하게 너를 다 알고 있다는 마냥 전문심리학 용어들을 줄줄 외는게 아니라 기본 질문자의 맘을 공감하려는 노력에서 출발해(이 책은 한겨레 상담코너 '형경과 미라에게' 게시판에 올라온 질문과 거기에 김형경씨가 올린 답변을 에세이 형태로 정리해 출간한 것이다.) 인정할 건 인정하게 만들도록, 스스로 나서서 맞서야 할 부분들을 조목조목 조언해주어 더 맘을 아프게 울리더라. 표현이라도 재수없으면, 공감은 개뿔 일장연설이나 늘어놓으려는 것 처럼 보이면 흥 이 사람 재수없네 지가 뭔데 날 이렇게 들여다 봐? 하며 달아날텐데 그런 달아날 여지 자체를 만들어 놓지 않으니. 그래서 <천개의 공감>이라는 제목의 의미는 책장을 넘길수록 가슴뻐근하게 와 닿는다. 반납하기 전 까지 이 책에 대한 포스팅을 몇개 더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소설가라는 직업은 인간과 세상을 탐구하는 영역의 일이라 믿으며, 이십대 중반부터 정신분석학과 심리학에 관한 책을 읽어왔다>는 이 작가의 소설들에도 호기심이 간다.

...지금까지 읽으셨다면 마음을 치료한다는 것, 삶을 개선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짐작하셨을 겁니다. 심리 치료의 핵심은 유년기를 수선하는 일입니다. 유년기에 만들어진 왜곡된 자기 이미지, 미숙한 생존법, 잘못된 현실 인식을 바로잡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과거와 현재, 실제와 환상, 자기와 타인, 내면세계와 외부현실, 의식과 무의식의 모든 영역을 총체적으로 점검하여 자기 자신과 생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는 일입니다. 그런 다음 타인의 욕망이 아닌 자신의 욕망, 유년기의 생존법이 아닌 성인의 생존법, 이번 생에서 지향하고 성취할 소명을 찾아내는 일입니다.

물병자리님,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많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다면 종이를 펴놓고 '이대로 산다면 죽을 때 후회하게 될 백 가지 일'을 적어보세요. 좀 더 즐겁게 살 걸, 그때라도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올 걸, 정신의 밑바닥까지 닿는 사랑을 한 번만 더 해볼 걸, 다섯 가지 수영법을 마스터할 걸.. 떠오르는 대로 모두 적은 다음 죽을 때까지 하나씩 실천하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삶입니다.

김형경, 천개의 공감, 한겨레출판
p 84 본문 中


덧붙여,
<천개의 공감>과 함께 빌린 책은 나르샤가 적극 추천한 도종환의 <부드러운 직선>. 절판되었다길래 구하면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지나가는 길에 헌책방에 들러 시집코너를 뒤적이다 <부드러운 직선>대신 얼결에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을 집어들고 나왔다? 찾는 이가 많은지 세 권이나 가져다 놓으셨길래..; 그 중 인쇄상태며 표지빛바램상태가 가장 양호한 녀석이 내차지가 됐다. 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