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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과 우민주의 :: 2009/06/14 13:55
방금 전, 온라인에서 아주 근사할 뻔 한 사람을 만났다.
'鼠를 몰아내기 전까진 좋지 못할 겁니다'라는 프로필을 보고 그저 가카를 싫어하는 청춘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다 자세한 프로필을 보게 됐는데, 어어 이 사람 보게.
모자쓰기,걷기,책읽고 상상하기,모두가 함께 하는 것을 꿈꾸기,자본주의를 넘어선 대안사회,일상,따뜻함,다정함,관심,애교있는 말투,밝은표정,작은배려,남을위한행동,화합
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니. 아니 뭐 이렇게 근사한 사람이 다 있어. 그의 블로그엔 몇 편인가 그리 많지 않은 글들이 올라있었고, 단숨에 읽어버린 나는 팬이 될 지도 모르겠노라 고백하기로 하고 두근두근 키보드위에 손을 얹었다. 그 때 였다. 그가 늘어놓은 '좋아하는 것' 아래에 있는 '싫어하는 것'에 눈이 간 순간은.
형편없는 아이돌음악에 취한 우민주의자들,그것을 합리화하며 너무도 떳떳히 좋아하는 자들,락음악이 아직도 순수예술인줄 아는 우민들,음악에 취하기만한 바보들
이것을 확인한 순간, 손가락의 맥이 확 풀렸다. 안녕. 하마터면 속을 뻔 했구나.
가끔 아이돌과 아이돌의 음악, 아이돌 팬들을 광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런 사람들의 논리는 대체로 '그들은 겉만 번지르르 할 뿐 음악성이 없다'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또 가끔은 사회의 진보를 고민하는 사람은 아이돌을 좋아하면 안 된다고 말 하는 사람들도 만난다. 그들은 '아이돌 =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대표적인 상품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서태지 팬모임(서태지에겐 공식 팬클럽이 없다) 시삽을 하면서 사회운동을 병행했던 선배가 있다. 물론 지금은 그냥 서태지의 잔잔한 안방팬 수준으로 열정(?)이 사그라들긴 했지만. 언젠가 더블아가들이 맘에 들어오기 시작했을 무렵 그 선배에게 저 두 가지 공격에 대한 의견을 물었더랬다. 선배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자본주의에서 자본주의 상품을 소비하는 것이 무어가 나쁘냐고.
물론 대안은 존재한다. MSG덩어리 라면이 존재하는가 하면 우리밀라면이 존재하고, 쥐머리가 나오는 새우깡이 존재하는가 하면 우리아이 착한새우도 존재한다. 동네 마트엔 먹으면 머리에 숭숭 구멍이 뚫린다는 미국산 소고기가 팔리고 있는가 하면 한살림 매장에선 청정 우리 한우고기가 팔리고 있기도 하다. 비단 식품뿐만이 아니다. 교육에도, 생리대에도, 공동체에도 어디든 대안은 존재한다. 대안을 택하는 사람들은 멋지다. 존경스럽기도 하고, 때로는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범한 대중들의 선택을 무시할 수 있는 것인가.
대중들에게는 이유가 있다. 예컨대 유기농 식품이 좋은 줄은 알지만 비싸서 엄두도 내지 못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대안 교육이 좋은 줄은 알지만 그러다 좋든나쁘든 이 사회에 적응해 나가지 못하게 되면 어쩔까 싶어 일반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부모도 존재할 것이고. 서태지 모임 시삽이였던 선배가 만들어 준 대안생리대를 여지껏 써보지 못한 이유는 간단명료하게도 샐 것 같아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이유 때문이였다.
아이돌은 친절하게도 항상 손 닿는 곳에 존재해준다. 그들은 끊임없이 음반을 내고 티비에 얼굴을 비추고 드라마에도, 쇼프로에도, 뮤직비디오에도, 뮤지컬에도, 광고에도 나와 내 곁에 머물러준다. 아가들은 이따금 콘서트를 열어 누나를 공연장이라는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해주고 때론 해외공연으로 누나를 비행기태워 인도해준다. 한 시도 심심할 틈을 주지 않는 이 '산소같은 너'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 이만큼 팍팍한 일상에 내가 필요로 할 때마다 항상 곁에서 다정한 위로가 되어주는 완벽한 동반자를 가진 사람은 세상에 얼마나 될 것이며. 더불어 아이돌의 노래는 그들이 가진 다양한 상품가치 중 하나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기에 가창력 논란은 팬 입장에선 별 대수롭지 않은(오히려 딴지 걸 일이 아닌데 거는 사람들이 이상해 보이는 일)일 인 것이다.
깨어 있는 사람의 선택은 진리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무려 '우민')의 선택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은, 결국 이상과 현실의 괴리만을 절절하게 느끼게 끔 해 줄 뿐이다. 대중들의 삶 가운데 답이 없다는 소리잖아. 늬들만 고고하게 살고 우리는 천박하게 사는 거니? 나는 서로가 선택하는 그 어떤 선택도(물론 더 권장되었으면 덜 권장되었으면 하는 것들이 존재하긴 하지만)서로의 삶을 관통하는 공통된 요구를 이해하며 받아들일 때 진정한 화합(위의 그가 좋아하는 것이라고 했던!)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예컨대 새우깡에서 쥐머리가 나왔다고 항의하는 사람과 우리아이 착한새우를 먹는 사람의 공통된 요구는 '믿고 먹을 수 있는 안전한 식품' 하나라는 거다. 그에게 대고 '너 새우깡이 얼마나 안 좋은 재료들과 공정들로 만들어지는지 진작 몰랐어? 그러니까 애초부터 가공식품 먹지 말았어야지 이 우민같으니'라고 하면 쌈난다. 팬질에서도, 심지어 운동에서도(sports든 movement든).
그 사람은 '배려 없는 행동'또한 싫어한다고 했다. 나는 당신의 배타적인 사고방식 또한 충분히 배려없는 행동같아 보이는데 어쩌나. 부디, 함부로 '우민'운운하지 말라. 우민의 판단잣대는 그 누구도 함부로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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