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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책 :: 2008/02/11 23:22

이따금, 아니 종종 엄마의 책은 날 놀래키곤 한다.

엊그제였나. 종일 티비만 보다 살짝 지루해져서 엄마가 있는 안방에 들어가봤다. 길게 누워 책을 읽고 있던 엄마는 내가 들어오자 '너 여기 있을거지? 엄마 니 방 가서 컴터로 일 좀 잠깐 하자'라며 벌떡 일어났다. 에이 뭐야 엄마 괴롭히러 온건데. 그래? 그럼 심심하지 않게 엄마가 보던 책이나 보고 있든지. 무심결에 엄마 머리맡에 있던 책을 집어들었다. <야누슈 코르착의 아이들>. 저자명과 책제목이 낯설다. 커버 안쪽에 적혀있는 저자 소개부터 읽어봤다. 야누슈 코르착. 폴란드 출신의 의사이자 교육자, 철학자로서 아동인권을 위해 헌신하다 나치에 의해 학살당한 사람이란다. 엮은이의 말을 보니 앨리스 밀러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철학자라고 칭송한 사람이라 되어있다. 앨리스 밀러라면 지난 학기에 내 심장이 쿵쾅대도록 만들었던 <폭력의 기억,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쓴 폴란드의 정신과 의사다.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재빨리 본문을 펴들었다. 아이들을 어떤 존재로 여기고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그의 깨달음이 일종의 잠언집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구절구절이 명구절. 어른과 아이의 차이는 단지 돈을 버는가 벌지 않는가의 차이일 뿐이며 어쩔 수 없이 어른에게 의존해 살고있는 아이들은 그 어른이 믿을 수 없는 어른일 때에 대단히 큰 상처를 받게 된다, 어른은 아이들에게 자신의 부족한 지점을 지적당하는 것을 매우 싫어해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억압하면서 정작 아직 서툰 아이들의 부족한 지점은 무서우리만큼 지적하는데 이것은 모든게 오직 어른에게만 유리하도록 만드는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이다 등등. 아 발견해버리고 말았다 여기 또 파헤치고 싶은 한 사람.

몇 달 전 내가 김형경에 푹 빠졌을 때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를 꺼내준 이도, 에리히 프롬 책을 읽고 싶다고 했을 때 <사랑의 기술>과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꺼내준 이도 엄마였다. (관련글 보기) 더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내가 처음 신영복 선생님의 이름을 알게 된 것도 아주 어렸을 적 부터 엄마의 책꽂이에 꽂혀있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때문이었다. (제목이 하도 특이해서 기억했었다. 어린맘에 제목 속 '감옥'이라는 말만 보고 신영복 선생님이 되게 무서운 범죄잔줄 알았다는; 책 내용은 무서운 범죄자가 개과천선해가는 과정을 담은 수기인 줄 알았고;;) 오랜 시간을 거쳐 나 스스로 찾았다고 생각한 길 앞에 엄마가 저만치 앞장서 걷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일찌기 엄마와 친한사이였다면 같이 책도 돌려읽고 인문학에 대해 재잘재잘 수다도 떨 수 있었겠다 싶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엄마와 그리 친한 편이 아니였고 사실 지금도 그러하다. 엄마가 읽는 책 - 특히 교육학이나 심리학서 - 를 보며 놀라는 데엔 많은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핵심은우리 엄마가 날 키워온 방식이 그러한 책들에 나와있는 '나쁜 사례'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젠 당시 엄마가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해하고 받아들여야겠지만 아직까지도 혼란스러운 건 어쩔 수 없다.

엄마는 늘 좋은 책만 읽더라. 응 그걸 인제 알았어? 아니 뭐 그렇다기보단.. 난 좀 이상해서. 뭐가 이상해? 엄마가 읽는 책은 한결같이 다 좋은 책인데, 왜 엄마는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닌거야. 엄마는 과장되게 웃었고 나는 방 밖으로 나가버렸다. 좀 더 시간이 흐른 후엔, 엄마와도 동반자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까.


덧 1.
지금 찾아보니 앨리스 밀러는 야누슈 코르착 상을 받은 사람 중 하나였다.

덧 2.
야누슈 코르착도 앨리스 밀러도 다 폴란드 사람. 검색하다보니 이런 글귀가 나온다.

역사학자 노먼 데이비스가 '신들의 놀이터'라고 명명한 폴란드. 아우슈비츠를 품고 있는 이 땅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무엇인지 안다. 살인 방조자로서의 죄의식과 뿌리깊은 반유대주의는 오랫동안 폴란드인들의 의식세계를 분열시켰다.
진중권, 폭력과 상스러움, 푸른숲 中에서

어쩐지 폴란드에 가 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