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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로부터 자라나기 :: 2009/09/22 23:51
...(전략) 나는 어렸을 적부터, 대상이 사람이든 이데올로기든 조직이든, 더 헌신하는 사람이 느끼는 슬픔과 분노, 그리고 열정이 지나간 뒤의 황폐함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왜 언제나 더 사랑하는 사람이, 더 열정적인 사람이 상처받는지에 대해 분개했다. 이것이 그 어떤 이념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인생의 근원적인 불합리고, 부정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랑받을 때보다 사랑할 때, 더 행복하고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사랑하는 고통으로부터 자신의 크기, 깊이를 깨닫는다.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포함해 모든 대화는 최음제이며, 인생에서 깨달음만한 오르가슴은 없다. 상처와 고통은 그 쾌락과 배움에 대해 지불하는 당연한 대가이다. 사랑보다 더 진한 배움(intensive learning)을 주는 것이 삶에 또 있을까. 사랑받는 사람은 배우지 않기 때문에 수업료를 낼 필요가 없다. 사랑은 대상으로부터 유래-발생하는 에너지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 내부의 힘이다. 사랑하는 것은 자기 확신, 자기 희열이며, 사랑을 갖고자 하는 것은 권력 의지다. 그래서 사랑 이후에 겪는 고통은 사랑할 때 행복의 일부인 것이다.
사랑하는 것은 상처받기 쉬운 상태가 되는 것이다. 상처에서 새로운 생명, 새로운 언어가 자란다. '쿨 앤 드라이'. 건조하고 차가운 장소에서는 유기체가 발생하지 않는다. 상처받은 마음이 사유의 기본 조건이다. 상처가 클수록 더 넓고 깊은 세상과 만난다. 돌에 부딪친 물이 크고 작은 포말을 일으킬 때 우리는 비로소 물이 흐르고 있음을 깨닫게 되며, 눈을 감고 돌아다니다가 벽에 닿으면 자기가 서 있는 위치를 알게 된다. 이처럼 앎은 경계와의 만남에서 가능하다. 그러므로 편안한 상태에서 앎이란 가능하지 않다. 경계를 만났을 때, 가장 정확한 표지는 감정이다. 사회적 약자들은 자신을 억압하는 상황이나 사람을 만났을 때 '감정적'으로 대응하기 쉬운데, 이건 너무도 당연하다. 감정은 정치의식의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감정이 없다는 것은 사유도 사랑도 없다는 것, 따라서 삶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정(emotion)의 라틴어 어원은 자기로부터 떠나는 것, 나가는 것(moving out of oneself) 즉, 여행이다. 근대의 발명품인 이성이 정적이고 따라서 위계적인 것이라면, 감정은 움직이는 것이고 세상과 대화하는 것이다. 감정의 부재, '쿨'함은 지배 규범과의 일치 속에서만 가능하다. 반응하는 것, 이것이 인간의 모든 느낌, 모든 즐거움, 모든 열정, 모든 생각의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후략)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랑받을 때보다 사랑할 때, 더 행복하고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사랑하는 고통으로부터 자신의 크기, 깊이를 깨닫는다.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포함해 모든 대화는 최음제이며, 인생에서 깨달음만한 오르가슴은 없다. 상처와 고통은 그 쾌락과 배움에 대해 지불하는 당연한 대가이다. 사랑보다 더 진한 배움(intensive learning)을 주는 것이 삶에 또 있을까. 사랑받는 사람은 배우지 않기 때문에 수업료를 낼 필요가 없다. 사랑은 대상으로부터 유래-발생하는 에너지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 내부의 힘이다. 사랑하는 것은 자기 확신, 자기 희열이며, 사랑을 갖고자 하는 것은 권력 의지다. 그래서 사랑 이후에 겪는 고통은 사랑할 때 행복의 일부인 것이다.
사랑하는 것은 상처받기 쉬운 상태가 되는 것이다. 상처에서 새로운 생명, 새로운 언어가 자란다. '쿨 앤 드라이'. 건조하고 차가운 장소에서는 유기체가 발생하지 않는다. 상처받은 마음이 사유의 기본 조건이다. 상처가 클수록 더 넓고 깊은 세상과 만난다. 돌에 부딪친 물이 크고 작은 포말을 일으킬 때 우리는 비로소 물이 흐르고 있음을 깨닫게 되며, 눈을 감고 돌아다니다가 벽에 닿으면 자기가 서 있는 위치를 알게 된다. 이처럼 앎은 경계와의 만남에서 가능하다. 그러므로 편안한 상태에서 앎이란 가능하지 않다. 경계를 만났을 때, 가장 정확한 표지는 감정이다. 사회적 약자들은 자신을 억압하는 상황이나 사람을 만났을 때 '감정적'으로 대응하기 쉬운데, 이건 너무도 당연하다. 감정은 정치의식의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감정이 없다는 것은 사유도 사랑도 없다는 것, 따라서 삶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정(emotion)의 라틴어 어원은 자기로부터 떠나는 것, 나가는 것(moving out of oneself) 즉, 여행이다. 근대의 발명품인 이성이 정적이고 따라서 위계적인 것이라면, 감정은 움직이는 것이고 세상과 대화하는 것이다. 감정의 부재, '쿨'함은 지배 규범과의 일치 속에서만 가능하다. 반응하는 것, 이것이 인간의 모든 느낌, 모든 즐거움, 모든 열정, 모든 생각의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후략)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교양인
p. 23~24 머릿말 中
p. 23~24 머릿말 中
내 안의 질서가 흐트러져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고 느낄 때 가장 큰 안식이 되어 주는 것은 책이더라. 다시 집어든 정희진씨의 책 속에서 실마리가 되어 줄 구절을 발견하곤 환호했다. 상처는 사랑에서 기인할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그 상처에서 반드시 사유의 싹이 자랄 것이라는 것.. 고맙고 든든한 이 사실들이 내 안의 나를 이해시켜주어 조금씩 스스로를 보듬어 치유해 나갈 수 있게 되길.. :)



